‘김재록과 이헌재’
‘김재록씨 로비의혹 사건’에서는 유독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눈에 띄게 거명된다. 김씨가 ‘헌재 Lee 사단’으로 분류됐을 만큼 이 전 부총리와 가까운 사이였고 이 전 부총리가 직간접적으로 간여했던 부실 금융기관 구조조정 과정에서 김씨가 수많은 컨설팅 물량을 수주, 두 사람 사이에 ‘유착관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DJ정부 출범 초로 거슬러올라간다. 전남 영광 출신의 김씨는 대선 당시 DJ캠프에 합류, 특보타이틀을 들고 발을 넓혀가던 상황. 이 전 부총리는 DJ정부 정권인수위원회에서 환란수습 실무작업을 담당하는 비상경제대책위원장을 거쳐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을 맡았다. 두 사람을 연결해준 이는 이 전 부총리의 오랜 친구인 오호수 전 증권업협회장(광주 출신)인 것으로 전해진다. 오 전 회장은 김씨가 최근 인베스투스글로벌 대표직을 넘겨줬을 만큼 가까운 사이다.
이 전 부총리는 당시 금융ㆍ기업구조조정을 총괄하는 중책을 맡았어도 JP진영으로 분류(김용환 전 자민련 부총재가 추천)된 탓에 DJ정부 핵심 인사들과는 아무런 끈도 없었다. 그 때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김씨가 이헌재씨를 정권 핵심부의 호남 인맥에 연결시켜줬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관건은 김씨가 대표를 맡았던 아더앤더슨컨설팅 한국지사가 정부부처경영진단, 자산관리공사 부실채권 매각, 각종 금융ㆍ기업구조조정 컨설팅 등 환란 이후 주요 대형 컨설팅 물량을 사실상 ‘싹쓸이’한 것이 이 전 부총리와 관계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 전 부총리가 김씨의 영업에 직접적 지원사격을 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그러나 금융계의 한 인사는 “당시 구조조정에 관한 한 이헌재씨는 절대적이었다. 직접 개입은 하지 않았더라도 고위층과 가깝다는 소문이 나면 일감은 자연스럽게 몰리는 법”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이 전 부총리와의 친분을 들어 ‘호가호위(狐假虎威)’했다는 얘기도 많이 나온다. 재정경제부의 한 인사는 “정말로 측근이라면 측근인 양 행동하지 않지만 김씨는 이 전 부총리의 약속과 일정까지 알고 있다는 식으로 측근행세를 너무 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재경부와 금융감독위원회 실무선에서는 이 전 부총리에게 ‘김씨에 대한 소문이 안 좋다’는 보고를 여러 차례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 부총리가 김씨와 관계를 지속한 것은 김씨의 기획력과 파격적 사고를 나름대로 평가한데다 호남인맥 관리를 위한 현실적 필요성 때문으로 추측된다.
김씨는 진념 전 경제부총리와도 이 전 부총리 못지않은 친분을 유지했고 이 역시 과시하고 다녔던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 모두 금전적 수수나 부적절한 영향력 행사는 없었더라도 김씨의 측근행세를 묵인했다는 책임은 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