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커트 웰든 전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에게 “북한에 투자할 한국과 미국 기업을 데리고 와 달라”고 부탁한 것은 극심한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선택으로 보인다.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다른 나라와의 경제 교류도 활발히 하겠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북한이 웰든 전 의원을 선택한 것은 그가 북한을 두 번이나 방문하면서 돈독한 신뢰관계를 쌓았고 코러스 프로젝트 등을 통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속도 붙는 외자유치=북한이 미국에 적극적인 화해 제스처를 보내면서 오랜 기간 얼어붙어 있던 북미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발맞춰 북한에 투자하려는 국제 자본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영국계 투자자문사인 고려아시아는 북한 내 유일한 외국계 합작 금융기관인 대동신용은행을 인수했다. 다른 영국계 투자자들도 북한 채권을 대량 매입해 북미관계 개선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하지만 중국이 가장 규모도 크고 앞서 있다. 150여개 해외투자기업의 90%가 중국 몫이다.
북한은 지난 16일 이집트 건설ㆍ시멘트 업체인 오라스콤건설로부터 1억1,500만달러를 투자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단일 규모로는 최대다. 오라스콤건설은 북한의 명당무역회사와 계약을 맺고 상원시멘트연합기업소 지분 50%를 취득했다. 지난 89년에 독일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상원시멘트는 북한의 대표적인 국영 시멘트 공장으로 오라스콤건설의 자본으로 공장시설을 현대화하고 생산능력을 연 250만톤에서 300만톤으로 확장한다. 나세프 사위리스 오라스콤 최고경영자(CEO)는 “북한은 발전과 현대화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시멘트 투자는 여러 다양한 투자를 위한 전초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27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이집트 카이로를 방문해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오라스콤건설의 투자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달하는 등 해외 투자에 대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 주는 코러스 프로젝트=웰든 전 의원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코러스 프로젝트는 사할린의 가스를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북한과 남한으로 연결해주는 2,300㎞ 길이의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거대 사업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코러스 프로젝트 공사에 4년간 25억~40억달러가 투입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 사업은 김대중 정부 초기 때부터 구상해오던 사업으로 미 의회에서는 웰든 전 의원이 가장 활발하게 사업을 추진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러시아는 사할린 가스를 팔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얻게 되고 한국은 중동산 원유나 인도네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보다 20%가량 저렴한 에너지원을 확보하게 된다. 북한은 통과료로 가스의 15%를 받아 에너지난 해소에 사용할 수 있다. 미국은 엑손모빌 등 자국 기업에 새로운 수익원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한국이 추진 중인 러시아 이르쿠츠크 가스관 공사에 비해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와 복잡한 이해관계, 추진력 부족 등으로 그동안 답보 상태에 머물러왔다.
이번에 웰든 전 의원이 북한 투자단을 구성하면서 코러스 프로젝트를 다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쳐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웰든 전 의원은 “2003년 5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조찬 자리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다”며 “코러스 프로젝트는 관련 당사자들이 윈윈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한편에서는 이번 사업의 성사 가능성에 대해 신중히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국제문제 전문가는 “북한과의 거래는 모든 것이 결정된 후에도 하루 아침에 틀어질 수 있다”며 “여러 가지 변수가 많은 만큼 구체적인 일정들은 진행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