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신화·종교 속 神 한데 조합해보니 괴물

■ '김기라 개인전' 두산갤러리서 29일까지<br>'전쟁 부른 종교 모습' 그대로 투영<br>"조화와 공존 없는 발전은 폭력 욕망 버리고 휴머니즘 찾아가야"

'오리엔탈 스펙터 몬스터(Oriental Specter Monster)'


역사ㆍ신화ㆍ종교에 관한 책들을 뒤져 인류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신상(神像) 이미지들만 찾아 손으로 찢어내 하얀 종이 위에 이어 붙였다. 얼굴의 반쪽은 그리스 여신, 나머지 반은 불상이며 로마 신상의 배 아래로 이집트신의 다리가 뻗어 나왔다. 손끝에는 유연한 시바신이, 발끝에는 신성한 소가 자리 잡았으며 가슴팍에는 물고기ㆍ코끼리ㆍ뱀 등 사람이 섬기던 동물신의 형상이 똬리를 틀었다. 이 모든 종교 이미지의 조합은 뜻밖의 결과를 가져왔다. 괴물이 됐다. 현대미술가 김기라는 자신의 이 신작을 두고 '스펙터'(specter), 즉 '망령'(亡靈)이라 명명했다. 종교의 공존이 조화보다는 오히려 갈등과 전쟁을 유발했던 과거를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

이 '스펙터 몬스터 시리즈'를 중심으로 한 김기라의 개인전이 종로구 견지동 두산아트센터 내 두산갤러리에서 1일 개막해 29일까지 이어진다. 작가는 지난해 상반기에 두산 연강재단이 후원하는 두산 레지던시 뉴욕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이번 전시는 그 보고전 성격도 지닌다. 총 60여점의 '스펙터 시리즈'를 위해 시대ㆍ지역을 아우르는 800여권의 문화사 서적이 쓰였다. 대형 사진 콜라주(관계없는 것을 짜맞추어 예술화한 것) 17점, 관련 드로잉 36점과 작가가 지난 8년간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300여 점의 앤틱(골동품)으로 설치작품이 함께 선보였다.


"조화와 공존 없는 발전은 폭력이며, 그 욕망의 폭력 안에 우리가 놓여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전시제목을 '공동선(共同善)-모든 산을 오르라'라고 붙였다. 신화와 종교에서 파생된 성상(聖像)들이 사람들 모두에게 유익하고 좋은 '공동선'을 향하기 보다는 보이지 않는 망령이 돼 인간을 옥죄며 욕망을 부추긴다는 게 작가의 목소리다. 그리고 그 망령은 욕망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을 투영한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수녀 마리아의 말을 인용한 작가는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산을 오르는 것 역시 욕망을 억제하기 위해 다른 종류의 욕망을 발현하는 것"이라며 '모든 산을 오르라'는 부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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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에 불을 밝힌 '신은 너를 용서했지만 나는 결코(God 4Gives U, But I Do Not)'라고 번역되는 텍스트작업(문자작품)은 신이 믿음ㆍ소망ㆍ사랑과 욕망의 4가지를 주었지만 그것을 거부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욕망에서 비롯된 갈등이 아닌, 모두가 조화를 이루며 행복할 수 있는 휴머니즘(인본주의)을 찾아가자는 권유이기도 하다.

또 다른 설치작품 '우리들의 잃어버린 마음가짐, 2012'는 이른바 결혼예물 3종세트인 다이아몬드와 금, 진주로 이뤄져 있다. 크고 반짝이지만 이것들은 모두 가짜다. 게다가 깨지기 쉬운 유리판 위에 놓여있다. 불안함 위에서 영원을 약속하는 이 물신(物神)주의적 보석들 역시 의도는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우상과 다를 바 없다.

색감이 탁월한 대형 오일스틱 드로잉과 세계 각지에서 온 동서고금의 신상들까지 가득한 볼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전시장 끝에 다다른다. 덩그러니 놓인 설치작품 앞에서 관람객은 "저게 뭘까" 생각하게 된다. 작품 제목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 자신의 편견이나 욕망이 어떤 생각으로 대상을 보게 하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자리다. (02)708-5015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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