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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1932~2006)은 한국인 최초로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에서 최고 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당시 백남준은 독일관 대표로 상을 받은 것이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되고 가장 권위 있는 비엔날레인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이 없다는 사실에 속이 탔다. 2년 뒤인 1995년에 창설 100년을 맞은 베니스비엔날레는 '마지막 국가관을 허가하겠다' 선언했고 중국 등이 치열한 경쟁에 가세했다. 이때 백남준은 남한과 북한의 공동 전시를 제안하며 한국관 설립의 당위성을 강조했고, 결정권을 쥔 마시모 카차리 베니스 시장에게 편지를 써 "한국관에서 남북 공동 전시를 열게 되면 당신이 노벨평화상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나섰다. 마침내 베니스는 이를 조건으로 비엔날레가 열리는 베니스 자르디니의 '마지막 국가관'을 한국관에 내 주었다.
백남준은 비록 남북 공동전시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한국관 설립 19년째인 올해 비록 북한 건축가가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음에도 지난 100년간 남북한 건축의 흐름을 담은 전시로 한국이 7일 첫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국가관 체제로 전시가 운영되는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이 설립된 1995년 이후 19년 만에, 미술전과 건축전을 통틀어 처음이다. 조민석 커미셔너가 기획 전시한 이번 한국관이 65개의 국가관 중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것이다. 베니스비엔날레는 매 홀수 해에는 미술전, 짝수 해에는 건축전을 개최한다.
한국이 7일(현지시간) 거머쥔 황금사자상은 한국 건축 역사상 처음이라는 것과 함께 남북 공동 전시라는 백남준의 못다 이룬 꿈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디뎠다는데도 큰 의미가 있다. 전시를 기획한 조민석 커미셔너(매스스터디스 대표)는 황금사자상을 높이 들어 올리며 영예로운 기쁨을 조국에까지 전했다.
특히 이번 수상은 우리의 역사적 아픔인 남북 분단의 상황을 건축·문화사적인 관점에서 재정리한 전시를 통해 이뤄낸 쾌거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조 커미셔너는 올 비엔날레 총감독인 렘 콜하스가 제안한 '근대성의 흡수: 1914-2014'라는 국가관 전시 주제에 부응해 남한과 북한을 아우르며 한반도의 지난 100년 간의 건축적 현상을 연구한 전시로, 건축 뿐 아니라 문학·미술 등 국내외 작가 29명이 참여했다. 그는 "1995년 한국관 건립 당시에는 지키지 못했던 남북의 공동 전시, 적어도 남과 북의 문화를 다루는 전시를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 출발한" 전시임을 강조했고, 전시 기획 과정에서 북한과의 공동 전시를 위해 수차례 여러 경로를 통해 북측과 접촉하며 의사를 타진했으나 아쉽게도 성사되지는 못했다. 대신 조 커미셔너는 한반도만이 가진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된 건축적 영향을 짚어보고자 다양한 연구를 기반으로 방대한 전시자료를 수집했다. 건축가이자 문학인이었던 이상의 시 '오감도'에서 영감을 얻어 '한반도 오감도'라는 제목을 붙여 '삶의 재건' '기념비적 국가' '경계들' '유토피아적 관광'의 4개 주제로 전시를 구성했다.
베니스비엔날레 심사위원단의 프란체스코 반다린 심사위원장은 "팽팽하게 대립된 (남북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새롭고 풍성한 건축 지식의 총 집합을 보여준 특별한 성과"라며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다양한 방식의 보여주기 기법의 사용은 살아있는 리서치로, 공간과 건축적 서사를 지리정치적 현실 안으로 확장 시킨다"고 평했다. 개막과 동시에 세계 문화계 관계자들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세계 미술계 파워 1위'인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스위스관 커미셔너는 "최고의 전시"라고 호평했고, 렘 쿨하스 총감독은 "방대한 양의 리서치에 감탄했고, 다른 국가관 큐레이터들에게 한국관의 전시를 꼭 보게 하겠다"고 말했다.
한국관이 주인공으로 우뚝 선 올 해의 베니스비엔날레는 11월 23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