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지배구조나 중소기업 보호 정책은 과감하게 버려야 하는 것 아닌가.”(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장)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있다.”(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
“기업 지배구조 개입은 마치 선거관리위원회가 정당의 지배구조를 개입하는 것과 같다.”(정 소장) “대표적인 그룹 중에서도 조사를 해보면 ‘아직도 이렇게 하나’ 등을 느끼게 하는 일이 수없이 있다. 합리적으로 따지면 말이 안되는 일들이 막연하게 행해지고 있다.”(권 위원장)
2시간 가까이 진행된 권 위원장과 정 소장의 만남. 기업의 불공정행위 등을 규제하는 공정위의 수장과 재계를 대표하는 삼성그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삼성경제연구소 소장의 대담은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지만 팽팽한 긴장의 순간도 잇따랐다. 특히 기업지배구조ㆍ기업규제 등의 문제를 놓고서는 한치의 양보 없는 공방이 펼쳐졌다.
정 소장이 먼저 공격에 나섰다. 정 소장은 “지배구조 등은 자본시장에 맡기고 공정위는 경쟁촉진 쪽으로 가는 게 시대변화에 맞는 것이다. 공정위가 빨리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권 위원장은 “취임 후 기업지배구조 문제는 간여하지 않으려 했고 앞으로도 제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개별기업의 경쟁력과 관계없이 시장에서 성패를 결정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가 기업집단 시스템이고, 시장기능을 작동시키지 않게 하기 때문에 관심을 갖는다”고 맞받아쳤다.
정 소장이 “외환위기를 겪은 후 기업정책은 그룹체제의 부작용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그룹의 긍정적인 효과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하자 권 위원장은 “오히려 그룹에 대한 비판ㆍ규제가 많이 없어진 것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권 위원장이 “(기업이) 경쟁질서를 스스로 지키고 공정위의 조사에 대해서도 이를 기업규제라고 보지 말고 협력해야 한다”고 말하자 정 소장은 “기업의 속성은 독점이다. 기업은 가능하면 독점적 위치를 가지려 하고 이를 막는 게 공정위다. 기업을 너무 선하게 보는 것 아니냐”고 대응했다.
공정위의 카르텔ㆍ불공정행위 등의 조사에 대해서도 의견이 오갔다. 정 소장이 “공정위의 조사는 무차별적인 음주단속과도 비슷하다”며 “혐의가 있는 기업만 조사하는 방식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건의했다. 이에 대해 권 위원장은 “그 같은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취임 후 줄곧 강조하는 게 전문성인데 조사ㆍ분석ㆍ법리해석 등의 전문성이 키워지면 해소될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권 위원장은 다만 “공정위의 불공정행위 조사 등이 기업의 의욕을 꺾는다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마치 학교에서 커닝하는 학생을 잡을 경우 면학 분위기가 망가진다는 말과도 같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