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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10일 이건희 삼성 회장이 쓰러진 후 삼성그룹의 한 고위인사는 "삼성은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이겨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1년여 후 만난 그의 얼굴에는 위기감이 역력했다. 스마트폰 판매에 급브레이크가 걸리면서 삼성전자의 이익이 반토막보다 아래로 내려갈 때 하필 생명 등 금융사들에도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악재는 이어진다고 했던가. '1등 삼성'의 상징과 같았던 삼성서울병원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에 처참하게 무너지고 모태인 삼성물산마저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자 누구도 위기극복을 자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삼성은 이 모든 위기를 극복해내고 있다. 삼성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병철 선대회장 시절부터 삼성이 구축해온 힘은 '오너-미래전략실-임직원'이라는 트로이카의 유기적 경영이며 그 중심에는 오너가 있다"며 "오너경영이 가진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의 장점이 없었다면 이번 위기도 극복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메르스와 관련해 제주신라 영업정지라는 초강수를 둬 조기에 사태를 수습한 것도 선대회장들에게 배워온 오너경영의 힘이 발휘된 것이라고 부연했다.
엘리엇 사태와 메르스, 글로벌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오너경영이 다시 주목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오너기업들의 선단식 경영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고 대우 패망에서 보듯이 문제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이들의 위기극복 능력과 과감한 투자가 더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오너경영 체제의 장점이 드러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엔저와 글로벌 경기침체, 수입차 점유율 확대라는 삼중고를 겪는 현대자동차는 정몽구 회장이 전례 없이 전면에서 위기극복에 나서며 조금씩 국면전환에 성공하는 모습이다.
한화그룹은 왜 오너가 중요한지 보여준다. 김승연 회장 복귀 이후 한화는 삼성과의 대형 빅딜과 면세점 입찰을 잇달아 성사시켰다. 특히 면세점은 초기 열세를 막판에 뒤집었다.
현장경영을 지속하고 있는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LG의 전략을 찾으라"거나 디자인 DNA를 심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위기극복과 먹을거리 확보를 위해 계속 뛰고 있다.
최근 그룹 전반에 걸쳐 위기감이 감돌고 있는 SK그룹에서 최태원 회장의 사면이나 가석방을 바라는 것은 바로 오너경영의 힘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신속하고 과감한 투자와 하나로 단결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은 오너에게밖에 없다"며 "안정적인 경영환경이 갖춰진다면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