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9월 29일] 키코 업체는 은행 고객으로 남고 싶다

통화옵션상품 키코로 인해 중소기업이 어렵다고 호소할 때 그것은 수사가 아니다. 현재 우리 중소기업들이 직면한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는, 목줄을 죄어오고 있는 현실이다. 올 상반기에만 지난해의 8배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낸 태산LCD의 갑작스러운 도산이 전혀 의아하지 않은 게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혹시라도 의아하게 생각된다면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내놓은 2건의 자료를 참고했으면 한다. 조사에 따르면 원ㆍ달러 환율이 1,100원으로 오르면 통화옵션상품 키코에 가입한 102개 기업 가운데 62.7%가 부도위험이 있다. 이들은 모두 은행의 우량 중소기업 평가를 받아 키코 상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우량 중소기업의 부도율이 60%를 넘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키코 때문에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인 132개 업체의 지난 6월 현재 키코 손실액은 3,228억원이었다. 이 금액이 9월 현재 9,466억원이 됐으니까 석 달 만에 200%, 1년으로 환산하면 800%다. 아무리 살인적인 사채 이자라도 여기에는 명함을 내밀 수 없을 것이다. 키코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지금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일단 손실액을 대출로 돌려달라는 것이다. 워낙 예상하지 못한 손실이라 당장은 갚을 수가 없지만 대출로 돌려주면 천천히 돈을 벌어 갚겠다는 것이다. 그런 중소기업들에 요즘 은행들은 대출 회수, 신규 대출 불가, 신용등급 강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21일 본지 6면은 그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은행으로부터 여신한도 축소를 통보받은 중소기업 재무담당자는 “키코로 손실을 입혀놓고 여신까지 줄이겠다고 나선다”고 울화통을 터뜨렸다. 25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환헤지 피해대책 촉구 기자회견에서는 “사기친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키코가 보약인 줄 알고 먹었는데 독약이었다”며 은행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은행들도 나름의 사정이 있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은 위기 상황이며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첫번째 주체는 은행이라는 점이다. 은행은 키코를 판매할 때 큰 책임감과 서비스 정신으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 책임감과 그 서비스 정신으로 현재 계약을 해지하고 싶어도 해지하지 못하고 있는, 그래서 계약이 진행 중인 고객들에게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줘야 한다. 은행들도 이 고객들이 없어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은 은행이 평가한 우량 고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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