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 따르면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조문차 방한한 북한 대표단은 이 전 대통령의 예방을 원한다고 당시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을 통해 전했다.
이 전 대통령은 “불쑥 면담을 신청했다고 기다렸다는 듯이 만나주는 것은 북한의 착각을 더욱 견고히 할 뿐”이라면서 “무엇보다 잘못된 사고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이 시혜를 베풀듯 정상회담에 응하고, 경제적 보상을 요구하던 관행에서 벗어나려 했다는 것이다.
결국 북한 조문단은 하루가 지난 후 일반 출입자와 같은 절차를 거쳐 청와대를 방문해야만 했다.
정상회담을 논의할 당시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상태는 매우 악화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은 “2011년 러시아를 방문한 김 위원장은 만찬장에서 공연팀을 격려하기 위해 불과 20∼30센티미터 높이의 단상에도 혼자 올라가지 못했으며, 3개월 후인 12월 사망했다”고 러시아 메드베데프 대통령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전했다.
앞서 북한은 이 전 대통령의 취임식에도 참석하겠다는 뜻을 전했지만 불발됐다.
북한이 ‘대통령 당선에 도움을 줘 감사하다’는 내용의 이 전 대통령 친필 서한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은 “선거 동안 나를 비방하지 않았고, 그 결과 내가 당선됐다는 것인데 어이가 없었다”고 떠올렸다.
원자바오(溫家寶) 전 중국총리가 남북 정상회담을 중재하고 나선 점도 눈길을 끈다.
원 전 총리는 2009년 10월 10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이 전 대통령에게 “내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는데 정상회담을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정치적 인기를 얻기 위한 회담은 거부하고, 서울에서 개최하자는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2주 후 이 전 대통령과 원자바오 총리는 다시 만났다.
2009년 10월 24일 태국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다시 만난 원 전 총리는 “김정일 위원장이 대통령 각하를 진심으로 만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전했다.
이듬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태를 거친 후인 2011년 5월22일 일본 도쿄에서 한·일·중 정상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도 원 전 총리는 이 전 대통령에게 긴급 전갈을 보냈다.
다음 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예정이라는 원 전 총리는 “김 위원장은 아무런 조건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김 위원장 밑의 사람들의 권력이 매우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통령이 직접 만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것이었다.
요컨대 김 위원장 모르게 북측 관계자들이 여러 가지 경제적 조건을 제시하며 회담을 방해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디지털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