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잊혀져 가는 인터넷 대란

길을 걷다가 튀어나온 돌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다. 예기치 않았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같은 돌에 또 넘어진다면 사람들은 그를 조금은 모자란 듯이 바라본다. 만약 돌에 넘어진 후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떨던 사람이 또 같은 돌에 넘어졌다면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이야기할까. 1월 25일 인터넷 대란이 발생한 지 오늘로 꼭 6개월째가 된다. 당시는 전국이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듯 요란했고 정보보호 체계를 곧 갖추지 않으면 정보화는 의미가 없는 일로 여겨지기도 했다. 각 언론은 연일 정보침해 사고를 보도하고 정부는 정보보호영향평가, 전폭적인 정보보호 산업 지원, 24시간 가동의 조기경보시스템 도입 등 여러 가지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것이다. 그러나 요란하던 인터넷 대란은 원인조차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한 채 사람들의 뇌리에서 서서히 사라져갔으며, 곧 정보보호 강국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일장춘몽이 되어 버리는 듯하다. 6,000여명의 개인 신용 정보가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유출되는 사건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고, 바이러스와 웜에 인한 피해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해킹의 신고 건수도 수 배이상 증가하고 있고 스팸메일 등과 같은 또 다른 정보 침해에 의해 사람들은 불편을 겪고 있다. 인터넷 대란 이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상당한 규모로 평가받고 있는 정보보호산업도 1ㆍ25 인터넷 대란이후에 기대하는 만큼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두지 못했다. 여전히 정보보호업체들은 매출과 수익구조의 어려움을 겪고 있고 중소기업들의 정보보호 시스템 구축은 10% 대를 훨씬 밑돌고 있다.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은 최근 정보보호업체 사장단과의 간담회에서 정보보호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공공기관에서의 수요확대와 조달단가 현실화, 수출지원 등은 정보보호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여겨진다. 반가운 일이기는 하나 이러한 약속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후속 대책도 정보보호진흥원에 조기 경보시스템을 설치하기 위해 실시간 종합 상황실을 구축하고 있는 것과 ISP와의 협조체제를 구축했다는 것 이외에는 별로 진전되는 바가 없는 듯하다. 언제 재발할 지도 모를 인터넷 침해사고를 볼모로 부처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보보호예산 편성에 대한 기대는 기획예산처를 설득하지 못한 채 무산되고 정보화 사업에 선행되는 정보보호 영향 평가는 언제 실현될지 조차도 알 수가 없다. 정보보호에 관한 한 모든 부처가 협력해도 완벽할 수 없는 숙제가 즐비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뒤에 밀려있다. 비가 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설마 홍수가...`라는 생각과 `둑을 쌓는 공`을 차지하려는 욕심이 또 다른 인터넷 침해 사고를 예견케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보보호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국민 스스로에게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인터넷 침해사고의 모습은 다양하게 우리에게 접근해 올 것이다. 1ㆍ25 인터넷 대란과 같은 사건은 주말이 아닌 주중에 발생해서 심각한 경제 피해를 입힐 수도 있고, 개인의 신용정보 유출로 인한 심각한 피해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러한 사건의 예방은 정부의 지원이나 산업체의 노력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국민 개개인이 정보보호를 실천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선행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인터넷 침해사고는 `세월이 약이 겠지요` 라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잊혀짐으로써 치유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왜 일어났는지, 어떻게 일어났는지, 어떤 경로로 일어났는지, 사고의 피해는 어느 정도인지를 면밀히 조사해서 유사한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때만이 이러한 사고와 연관된 어떠한 사고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거나 최소 총체적인 사고 대응책이라도 마련된다. 정부는 `아니면 말고`방식의 발언을 자제하고 정보보호 환경구축을 위해 약속한 것들을 지켜나가는 노력을 경주하고 동시에 국민은 정보보호를 위해 실천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는 길이 안전한 사이버사회 건설의 첩경이 될 것이다. 21세기에 우리가 이루려 하는 인터넷 강국의 꿈이 정보보호라는 든든한 기초 위에 세워지기를 기대한다. <정태명(성균관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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