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포커스] 세계 금융업계 "이제 파티는 끝났다"

금융위기 계기 과도한 연봉·인센티브 개혁 1순위로<br>감원 한파로 내년 중반까지 35만명 일자리 잃을 듯<br>오바마 "규제 강화" 천명… 자율경영 기대도 힘들어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은행'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싹 바뀌고 있다. 이전에는 '높은 연봉',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 '투명 경영' 등 긍정적인 단어가 먼저 연상됐지만, 지금은 '구제금융', '모럴 해저드', '구조조정' 등 암울하거나 부정적인 이미지가 앞 자리를 차지한다. '금융권의 호시절'에 조종이 울리고 있다. 일반인의 공분을 일으킬 만큼 터무니없이 높던 금융권의 보수 체계는 금융위기를 맞아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으며, 정리해고 등으로 은행원들은 거리로 내몰리는 형편이다. 한 외신은 이 같은 상황을 두고 "파티는 끝났고, 파티의 후유증만 깊어 간다"고 묘사했다. 과도한 빚을 끌어들여 위험천만한 파생상품에 '투기'했던 금융기관들의 몰락은 정부의 감독과 관리를 불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도 최근 "월가를 규제의 틀에서 재정립시키겠다"고 천명했다. 실물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비대해진 금융시스템을 제대로 관리 감독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할 것임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달리 보면 금융 위기가 진정되더라도 예전과 같은 은행의 자율적인 영업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뜻도 된다. 과거 '시장주의'를 교리처럼 떠받들던 은행들이 이제는 이윤 추구에 빠져 위기 관리를 소홀히 한 업보를 등에 짊어져야 하는 시대를 맞이 하게 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금융권의 임금 체계가 지나친 탐욕을 부추겼다"며 타 업종 대비 지나치게 높은 연봉과 과도한 위험 추구를 조장해온 인센티브(성과보수) 제도를 개혁 1순위로 꼽는다. 은행 경영진들이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내기 위해 부동산거품과 파생상품에 의존해 무리한 투자를 일삼으면서 과도한 연봉을 받아왔으나, 그 결과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실제 올 9월 파산신청을 한 리먼브러더스의 리처드 펄드 최고경영자(CEO)의 경우 지난해 말 보너스로 1,375만달러를 받았고, JP모건으로 넘어간 베어스턴스의 제임스 케인 전 CEO도 4,000만달러의 보너스를 챙겼다. 직원들도 돈 잔치를 하긴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월가의 5대 투자은행(IB)이 직원들에게 지급한 보너스는 무려 250억달러였다. 50개 상위 헤지펀드의 펀드매니저의 평균 연봉은 6억달러 수준에 육박했다. 특히 미 정부가 9개 은행에 투입한 1,250억달러 가운데 40억달러가 은행 중역들의 지난해 급여 및 연금 지급에 쓰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의 분노는 폭발했다. "월가의 임원들은 보너스를 포기하라"는 경고성 압력이 빗발치자, 제아무리 철면피 금융 기관들도 자의반 타의반 연봉과 보너스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최근 AIG는 에드워드 리디 회장 겸 CEO의 연봉을 내년까지 1달러로 제한하고, 경영진의 내년 보너스를 금지토록 했다. UBS, 바클레이즈 등 유수의 글로벌 은행들도 같은 조치를 내리면서 전세계 금융계가 '자숙'모드로 들어가는 분위기다. 시장에서는 이참에 정부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의 임원 임금을 해당 은행 근로자의 최저 임금의 25배 수준으로 묶어야 한다는 주장이 세를 얻고 있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 500지수에 포함된 대형 기업의 CEO평균 임금이 일반 근로자의 344배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같은 주장이 현실화되면 그간 거품이 잔뜩 끼었던 금융기관의 연봉 체계에 획기적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감원 한파도 은행원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헤드헌팅업체인 CT파트너스는 내년 중반까지 일자리를 잃을 금융기관 종사자들의 숫자가 35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브라이언 설리번 CEO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과 비교하면 전체 인력의 20%가 직장에서 쫓겨나는 셈"이라며 "전례 없는 금융산업의 대규모 인력이동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올해 월가와 런던 시티에서 15만명이 직장을 잃었으며, AP통신은 미국에서 신용위기가 도래한 지난해 이후 금융부문에서 28만개의 일자리가 사려졌다고 보도했다. 최근에는 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는 씨티그룹이 5만2,000명을 감원키로 해 지나친 외형 확대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줬다. 특히 파생상품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미국을 넘어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선진ㆍ신흥 20개국(G20)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은 크레디트디폴트스왑(CDS) 등 금융시장의 혼란을 초래한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거래 규모가 33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CDS 거래를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한 CDS 청산소 설립 움직임은 이미 가시화된 상태다. 내년 4월로 예정된 2차 G20회의에서 세부사안에 대한 후속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어찌 됐던 파생상품과 관련한 은행들의 사업모델은 대폭 축소될 것이란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투자은행이 퇴장한 것도 은행에 대한 정부의 감독이 강화될 것으로 보는 근거 가운데 하나다. 월가의 5대 투자은행 중 현재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뿐이다. 나머지는 매각되거나 파산보호 신청의 운명을 맞았다. 게다가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기업 구조를 투자은행에서 은행지주회사로 바꿨다. 이로써 이들 은행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로부터 감독을 받아야 되는 처지가 됐다. 이는 새롭게 재편될 금융계가 독립형 투자은행이 중심에 있던 예전에 비해 좀더 안정적인 대신 훨씬 많은 규제를 받아야 함을 의미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