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4월 03일] 연세대냐, 동경대냐…

“동경대에 있다가 연세대에 온 지 9년째가 돼서야 보수가 비슷해지더군요.” 2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염한웅(42)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는 우스갯소리로 자신의 처지를 빗대 국내 과학자들의 처우 문제를 꺼냈다. 사실 이날은 염한웅 교수가 세계 최초로 초고집적 실리콘 반도체 소자의 금속배선보다 선폭이 50분의1이나 더 작은 금속나노선(원자선)을 기판 위에 대량 생산할 수 있는 핵심기술을 개발, 과학 담당 기자들에게 관련 성과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염 교수가 10년 가까이 진행하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선 제작 기술은 그의 연구 자체가 늘 ‘세계 최초’가 돼야 하는 흥미로운 상황이다. 원자선 연구 분야를 창시함은 물론 원자선이라는 학술용어를 만든 이도 바로 염 교수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탁월한 연구성과를 한국에서 완성하고 싶은 마음에 그는 지난 1999년 일본 동경대 물리화학부 정교수가 될 수 있는 조교수 4년 차 경력을 과감히 포기하고 연세대행을 택했다. 그러나 국내 최고 보수 수준을 자랑하는 연세대 교수임에도 현재 그가 받고 있는 급여가 고작 9년 전 동경대 조교수 4년 차 월급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우려했던 대답이 이어졌다. “솔직히 일본 동경대 정교수로 돌아와달라는 요청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자들을 생각하면 절대 그럴 수 없지만 솔직히 고민입니다.” 그의 ‘흔들림’은 결국 ‘명예’와 ‘기회’의 문제인 듯했다. 이름값 하는 대학들이 보유한 ‘자산’은 예나 지금이나 ‘보다 많은 학생을 입학시켜 보다 많은 돈을 끌어 오는’ 수준에 그치고 있단다. 학생들은 쟁쟁한 선배들의 후광에 취직만 잘하면 만족하는 식이다. 과학자에 대한 처우도 해외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다. 염 교수가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은 다음 한 마디에 모두 압축됐다. “외국에 나가서 연세대 염한웅 교수라고 소개하면 늘 이런 식의 질문이 나옵니다. ‘어느 나라에서 오셨나요’라고….” 100번 부인하고 싶어도 전도유망한 젊은 과학자들에게는 ‘우물 안 개구리 싸움’에 혈안인 국내 대학보다 세계적 수준의 대학으로 진출하는 게 분명 유리한 선택이다. 가뜩이나 과학기술부 폐지로 과학계 ‘홀대’가 우려되고 있어서 그럴까. 염 교수 사례와 같은 현장의 ‘작지만 큰 떨림’이 더욱 확산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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