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제로 섬 게임

최형욱 기자<증권부>

“잘 알면서 왜 그러세요.” 금융감독 당국의 전 고위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한 한 증권사의 임원에게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이었다. 대외적으로는 “풍부한 금융감독 경험과 식견을 높게 샀다”고 말하지만 내막은 정부와 관계 유지를 위한 인사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증권 업계가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감사 등 임원 선임을 놓고 분주하다. 대우ㆍ삼성ㆍ서울증권 등이 전 증권업협회장, 증권선물위원회, 금융감독원, 정부부처 고위인사 등을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으로 대거 선임하기로 결정했다. 또 증권사 감사직은 예전과 다름없이 금감원 출신으로 대부분 채워질 전망이다. 앞서 언급한 임원은 “이들 인사들은 금융제도나 법리 등의 실무에 밝아 경영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감독 당국과 불편한 일이 생겼을 때 바람막이는 아니더라도 최소 말이라도 통하도록 해줄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해당 퇴직 인사들로서도 3년 정도는 임기가 보장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 같은 커넥션이 형성될 경우 피해는 일반 투자자 등 애매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한 증권 업계의 관계자는 “금융감독이 사적인 인연 등에 얽힌다면 시장 투명성 감시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며 “인수합병(M&A)이나 규제 완화 등 이해관계가 복잡한 사안이 불거질 때도 ‘줄 없는’ 소형 업체만 당하기 쉬울 것”이라고 반박했다. 사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서로 좋은 일’ 때문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천성산 고속터널 공사 중단으로 도룡뇽은 보금자리를, 환경단체는 명분을, 정부는 지지기반 확대 효과 등을 얻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 국민들은 2조원 이상의 혈세 부담이 불가피하게 됐다. 대기업 노동자들은 강성 투쟁으로 일을 덜하고 임금은 더 받아 좋을지 모르지만 협력 업체 임직원들은 그만큼 혹독한 환경에서 일하기를 강요 당한다. 회사측이 수익성 보전을 위해 납품가를 후려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 업계의 사정도 이와 비슷하다. 업계와 감독당국 등은 서로에게 좋은 일일 수 있지만 그 비용은 일반투자자, 증권사 고객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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