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경쟁력 높이기 위해서도 우리 문화 자긍심 고취는 필수 외규장각 도서 반환 계기로 국민적 관심 높아져 감개무량 재미있는 역사 교과서 만들고 자학사관 대신 긍정사관 심어야 "급속한 세계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한국사 교육은 더욱 중요합니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면 역사학습을 통해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는 것이 필수 요건이기 때문이지요. 또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확보하는 차원에서도 우리 역사 면면에 흐르는 평화공존의 정신을 재평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같은 우리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쳐 국제사회에서 순기능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한국사 교육의 목표입니다." 이태진(68ㆍ사진) 국사편찬위원장은 지난 22일 정부가 발표한 '역사교육 강화방안'을 거듭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고교 교육과정과 5급 공무원 공채시험 등에서 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것을 두고 "단순히 과거 민족주의적 차원의 교육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미래지향적 교육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최근 145년 만에 프랑스에서 국내로 되돌아온 외규장각 도서 반환의 일등공신이기도 한 이 위원장은 유물환수를 계기로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드높아져 더없이 기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시는 빼앗기지 않을 우리의 문화유산=이 위원장은 20년 확신의 결과인 외규장각 의궤 귀환 앞에서 "말 그대로 감개무량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동시에 우리 유물을 다시 빼앗기는 일도, 우리 역사를 평가절하하는 일도 절대 없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 반환이 아니라 임대갱신이라는 점을 우려한다는 말에 그는 "왕실이나 정부가 생산한 물건의 소유권은 바뀔 수 없다는 게 국제법상 관례다. 따라서 '대여' 형식으로 돌려받았다는 이유로 외규장각 의궤를 프랑스가 되가져갈 것이라는 가정(假定)은 어불성설이다. 즉 조선왕실이 제작한 국가적 기록물은 프랑스군이 약탈해 프랑스 국가재산으로 등록하고 국립도서관에 소장해왔을지언정 국제법상 그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 것'이라는 확고한 이론적 기반이 있었기에 과감히 반환 요청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과 외규장각의 인연은 서울대 교수였던 1988년 그가 서울대 규장각 도서관리실장을 맡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 관악캠퍼스 내에 새로 지어진 규장각으로 들어서던 중 이곳을 방문한 어린이 네댓 명의 대화에 귀가 번쩍 뜨였다. "규장각이 뭐야?" "중국집이잖아." 깜짝 놀라 사무실로 돌아온 그는 전화번호부를 뒤져 실제로 규장각이라는 이름의 중식당이 있음을 확인한 후 탄식했다. 규장각을 제대로 알리리라 다짐한 순간이었다. 이후 규장각 소개책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는 외규장각 도서 환수에 결정적 근거가 된 '반출경위 문건'을 찾아냈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극동함대 지휘관 피에르 구스타브 로즈 제독이 철수하면서 '강화도의 한 건물에 5,000여권의 책이 있는데 그 중 우리 국립도서관에 소장할 340여 책은 싣고 나머지는 모두 불태우고 간다'고 적은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이에 국제법을 전공한 고 백충현 서울대 교수에게 자문을 구하자 '명백한 문화재 전시약탈 행위이니 반드시 반환요청을 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1991년 11월 서울대 규장각은 서울대 총장 이름으로 정부에 공식적으로 '외규장각 도서 반환요청'을 했고 이듬해 프랑스 외교부에 정식으로 반환 요청을 하게 된다. 이 위원장은 20년 만에 이룬 반환의 공로를 한국의 경제성장과 국력신장 덕으로 돌렸다. "1990년대 이후 경제가 발전하니 자신감이 더 생겼던 것 같아요. 여기에다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라는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잊지 않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게 외규장각 얘기를 꺼냈고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지요. 국민들도 뜨거운 성원과 관심을 보여주니 프랑스 쪽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나라'임을 알게 됐고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성사된 일입니다. " ◇문화재 환수 전담기구, 재미있는 역사 교과서 만들어야=외규장각 도서가 돌아오기까지 20년을 기다리는 동안 이 위원장은 '유출문화재환수전담기구' 마련이 절실함을 깨달았다. 마침 이번에 외규장각 환수 관계자를 초청한 청와대 오찬에서 대통령이 직접 전담기구 마련을 지시한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그는 "프랑스는 동아시아국장 한 사람이 지속적으로 사안을 꿰고 대응하는 데 비해 우리는 담당 외교관이 바뀌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식이었다"라며 "시행착오가 많았던 만큼 학술적 전문가와 외교 분야 전문가, 문화재 부문 전문인력까지 3자 공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부당하게 빼앗긴 유물, 매매 등을 통해 유출된 것 등을 가려내 환수 대상을 정하는 작업을 우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이 위원장은 이번 '역사교육 강화방안'에 발맞춰 '재미있는 역사 교과서'를 제안했다. 그는 "광복 직후 국가를 새롭게 세운 상황에서 당시 한국사 교육은 다분히 민족주의적 입장을 취했고 이어 경제개발 시대에는 무한경쟁의 논리 속에 국사가 선택과목으로 밀려났다"며 "현행 국사 교과서는 입시 위주로 연도와 사건나열식으로 구성돼 있다 보니 오히려 학생들의 흥미를 떨어뜨린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재미없는 교과서를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국사편찬위원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설명을 곁들여 '왜' '어떻게' 역사가 전개되는지를 알려주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 샘플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시에 "학교현장과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체험학습을 통해 우리 문화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교육을 실현하게 유도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학계와 교육계의 동의는 물론 현장 교육자들을 배려한 교사연수와 체험학습에 필요한 가이드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학사관' 버리고 '긍정사관' 되찾아야=이 위원장이 되돌려놓은 것은 외규장각 의궤뿐이 아니다. 1992년 그는 1910년 '한일병합'이 순종 황제의 서명 없이 불법적으로 자행돼 국제법상 무효임을 주장했다. 마침내 지난해에는 일본 도쿄국립공문서관에서 이를 입증할 '일본 측 한일병합 조서'도 찾아내 일반에 공개했다. 그의 설득에 꿈쩍 않던 일본 지식인들이 동조하기 시작해 초기에는 한일병합이 불법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본 학자가 10명 남짓이었지만 지금은 일본에서 520명이 (무효임을 인정하는) 서명을 했다. 이 위원장이 이룬 일련의 업적에는 우리 역사의 '자긍심'을 되찾으려는 일관된 뚝심이 있다. 그는 우리 역사를 열등하게 보는 '자학사관'을 깨고 '긍정사관'을 심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대한제국의 고종이 무능해서 나라를 잃었다고 역사를 해석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 고종은 개명군주였다는 게 그의 연구 결과다. "예컨대 서울 시청 앞에 도로가 여섯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방사성 도로체계는 고종이 처음 틀을 잡은 것이다. 초대 주미공사가 보고 온 워싱턴DC를 모델로 백악관과 의사당의 방사성 도로를 덕수궁 석조전과 경운궁 등지에 적용했고 도로를 넓혀 전차가 달린 것도 우리가 1898년이니 도쿄보다 3년이 빠르다. 소통이 잘되는 근대적 도시로 서울을 키우고자 한 고종은 결코 후진적이지 않았다"고 그는 설명했다. 국사편찬위원장으로서 그는 "민족적 자긍심을 높일 '긍정사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우리 문화를 사대주의라 평하기도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에서 흡수되지 않고 독자적 문화를 지킨 역사는 한국이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숨겨둔 그의 포부 하나 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조선왕조실록을 영어로 번역해 인터넷으로 서비스하는 것이다. "한국과 우리 역사를 알리는 데 이보다 더 유익한 일이 있겠냐"는 그는 "예산과 시간 문제를 따지면 멀고 험한 길이지만 분명히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일 강제병합 무효' 선언 주도적 역할도 |
공무원 리더십 강좌 개설 추진" "큰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자리는 사실 고통스럽고 외롭습니다. 그들은 얼마를 아끼고 더 벌까에 대한 생각보다 사람 간의 관계를 어떻게 이끄는 것이 더 좋을까라는 인문학적 문제를 절실하게 고민합니다. 그래서 인문학의 가장 큰 수요자는 최고책임자이자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CEO들이지요."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최근 일고 있는 '인문학 열풍'을 누구보다 반겼다. 그는 서울대 인문대학장 재임시절 정재계 고위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서울대 인문학 최고지도자과정'을 처음 개설한 인물이다. 이 위원장은 "대학에서는 인문학과 순수학문의 위기를 얘기하지만 취직이 급선무인 학부 학생들과 달리 최고지도자 계층은 인문학에 대해 더 목말라한다"며 "리더들은 조직 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이끄는 것이 우리 회사(조직)에 좋을까를 더 절박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인문학을 갈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대 인문학과정을 예로 들어 "리더인 CEO들이 최종 결정의 순간에 도움과 해법을 얻기 위해 찾는 것은 결국 젊은 시절 감명 깊게 읽은 소설이나 시집이라고 하더라"면서 "인간관계의 근원을 고민하는 이들은 자기 필요와 관점에서 강의를 듣게 되고 인문학은 그런 수요자들에게서 생명력을 얻어 '살아 있는 학문'이 된다"고 강조했다. 세상의 흐름을 읽는 경영인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질이나 문화ㆍ역사를 깊이 아는 것이 핵심 경쟁력 확보에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인문학이 지도층의 전유물은 아니다. 이 위원장은 "일본이 '무사의 나라'라면 우리는 '선비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한국인에게는 지적(intellectual)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며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인문학 열기는 그런 DNA에 기반을 둔 것이고 이 같은 관심과 열정이 쌓여 훗날 더 밝은 한국의 역사를 쓰게 될 것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키기 위해 정부 고위공무원을 위한 리더십 인문학강좌 개설을 꿈꾸고 있다. 그는 "고위공무원들이 강좌를 들을 여유로운 시간이 없다는 점이 난관이지만 분명히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며 "사전준비를 철저히 해 우선 광화문에서 시작해보고 반응을 살펴 과천ㆍ여의도까지 확대하는 방식으로 진행해보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