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大學 학과제로 돌아가야

작금 학부제의 폐단과 학과제의 복원에 대한 논의가 점차 일고 있다. 이는 때늦은 감이 있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매우 긍정적 현상이다. 필자는 정년 퇴임한 마당에 입을 열 필요가 있을까 망설이기도 하였지만 누구 못지 않게 학부 내지 대학원 교육의 황폐화를 경험한 끝에 우국적 심정에서 현재 한국의 대학교육이 지니고 있는 심각한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별해 보면, 수능시험을 치고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들은 입학 오리엔테이션에서부터 어느 학과가 인기가 있고 그 과에서 전공승인을 받으려면 무슨 과목을 택하고 어떤 전략을 짜야 하는 지에 대해 안내와 지도를 받는다. 예컨대 영어 전공계통과 컴퓨터 전공계통에 엄청 많은 학생들이 몰리는 실정이다. 그 반대로 유럽어 전공이나 화공학 같은 보다 전통적 학과에는 학생들의 관심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학 신입생들은 대학생활의 그 가장 귀중한 첫해를, 학문에 대한 포부와 정열과 소속감을 키워야 할 그 첫 해를 학과의 소속이 없이 약삭빠른 눈치작전만을 구사하며 보내기가 십상이다. 그러니 학부생들의 학문적 지식과 능력은 제대로 성장하지를 못하고 그에 대한 열정도 없다. 옛날에 볼 수 있었던 학우들간의, 선후배간의, 사제지간의 끈끈한 유대도 없다. 그 여파로 대학원에 갈 실력을 구비한 학생이 드물고 그러한 동기유발도 적어 많은 대학원 학과들은 학생들을 받지 못하여 그 명맥마저 보전하기가 힘들다. 다른 한 편 많은 대학들은 수시로 편제를 바꾸어 가며 질보다는 양적인 학생유치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마디로 현재 시행되고 있는 학부제는 많은 기초학문에 속하는 학과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고 사료된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말한다면, 대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대체로 제2외국어를 선택해 듣도록 되어 있는데 그 새내기들은 성적을 잘 받기 위하여 거의 100% 예컨대 초급독어 1을 택한다, 2학기에도 초급독어 1과 2가 개설되어 있어도 2를 듣는 학생의 수가 적고 1을 듣는 학생과 함께 수강을 하고 있어 강사는 1학기 때와 비슷한 수준의 수업을 하게 되고 학생들은 그 거의 같은 강좌를 되풀이 해 듣는다. 다음 2학년 1학기에 독어독문학과에서 지원자 외에 반 강제로 과에 배정된 학생들에게 독일어 수업을 하자면, 그 수강생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거의 독일어를 공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강사는 초급독어 또는 어휘연습 같은 기초과목을 가르칠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이러한 상황은 다른 외국어문학과의 동료들에게 들어보아도 또 전국 어디에서나 똑같다는 것이다. 필자가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독일어와 불어를 수년 간 가르쳐 보았지만, 그 곳의 외국어 교육은 정말 착실하다. 따라서 필자는 우리 나라와는 교육환경이 사뭇 다른 미국에서 도입되었다고 하는 전공광역화나 학부제가 우리 사회의 실정에는 맞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대학입학과 동시에 전공이 정해져서 마음놓고 다양한 학문에 전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는 것이 한국의 정서와 효율성에 부합하는 것이라 사료된다. 필자는 그와 관련하여 미국의 대기업인 휴렛패커드(HP) 회사의 최고경영자인 칼리 피오리나(Carly Fiorina) 여사를 즐겨 연상한다. 한국에도 여러 번 와서 잘 알려져 있는 그녀는 먼저 명문 스탠포드 대학에서 서양 중세사와 철학을 공부했고 그 후 투자신탁회사에서 이태리어 통역을 했고 나중에 경영학을 다시 공부하고 나서 점차로 그 경영능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와 같이 미국에서는 인문계 졸업생을 선호하는 기업이 많다. 대학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현재의 대학교육은 일종의 각기병에 걸려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위 인기 있는 학과에 많은 학생이 몰리고 주로 실용적 학습에 매달리는 것이 요즘 캠퍼스의 세태라고 한다면, 그 실용노선이 대학졸업자들의 취업률을 높이고 있는 것일까? 대학졸업자들의 취직은 한국의 경제상황에 정비례하고 그 취업률은 전체적으로 그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학생들이 취업을 위한 공부를 더 하거나 덜 해서 변동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사실은 20대 실업률이 매우 높은 작금의 현실이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참다운 대학교육은 제이 외국어를 포함한 기초학문의 튼실함과 다양성을 제고(提高)함에 있다 한다면, 필자는 참여정부의 희망과 더불어 지금이야말로 학부제를 지양하고 학과제로의 복귀를 심각하게 고려할 때가 아닌가 싶다. <염승섭(전 계명대 교수ㆍ독문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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