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하나·신한·우리 등 국내 4대 금융지주가 인수합병(M&A) 시장에서 격돌한다. 기업 인수금융을 대출하면 3~4% 수준의 안정적인 금리를 보장 받을 수 있는데다 타인 자본(예금)이 아닌 은행 자기자본을 활용하는 만큼 금리인하에 따른 예대마진 악화 우려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하반기 M&A 시장의 팽창과 맞물려 인수금융 시장이 '활황'을 띨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주요 은행들이 M&A 펀드 경쟁을 펼치고 있다.
1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우리은행(000030)은 흥국자산운용과 함께 7,000억원 규모의 사모대출펀드(PDF)를 조성하고 있다. 우리은행이 전체 펀드의 20% 규모인 2,000억원가량을 출자하고 흥국생명·흥국화재 등 태광그룹 계열 보험사가 총 1,5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나머지 금액은 펀드 결성 목표 시점인 6월 말까지 시중 연기금 등에서 유치할 방침이다. 펀드 운용은 흥국자산운용이 맡는다.
사모대출펀드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로부터 자금을 토대로 특정 투자처를 확보하지 않은 일정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M&A 기업에 선순위 인수금융을 제공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미국·유럽 등 선진 금융 시장에서는 M&A 거래의 주요 자금 공급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에 우리은행이 사모대출펀드 시장에 가세하면서 국내 4대 금융지주 모두 M&A 인수금융을 위한 '펀드 실탄'을 확보하게 됐다. 지난해 6월 신한은행이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과 공동으로 5,650억원 규모의 '신한시니어론펀드'를 결성해 은행발 M&A 펀드의 첫 신호탄을 쐈다. 뒤를 이어 지난해 11월 하나금융그룹 내 하나자산운용이 교직원공제회 등과 함께 7,000억원 규모 펀드 조성에 성공했으며 이후 3~4개월 만에 펀드 자금을 모두 소진해 현재 그룹 내 다른 계열사인 하나대투증권이 1조원 규모의 2호 펀드 조성에 나선 상태다. 아울러 KB금융(105560)그룹 역시 올해 4월 5,750억원 규모의 'KB선순위인수금융 사모대출펀드' 결성을 완료했다.
현재 조성을 진행 중인 펀드가 순조롭게 결성될 경우 국내 4대 금융지주의 사모대출펀드 규모는 약정액 기준 3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나아가 최근 NH투자증권(5,000억원), 한국투자증권(5,000억원) 등 대형증권사들도 사모대출펀드 조성에 나서고 있어 앞으로 전체 펀드 규모는 이보다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은행·증권사 등 국내 금융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사모대출펀드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은 우선 하반기부터 M&A의 큰 장이 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7조원의 '대어' 홈플러스 매각이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보이며 동양시멘트·대우증권·동부익스프레스 등 중량감 있는 M&A 매물도 대기하고 있다. 아울러 올해와 내년 사모투자전문회사(PEF)의 만기가 집중적으로 도래할 것으로 예상돼 M&A 시장의 규모가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또한 사상 초유의 1%대 저금리 국면을 맞아 영업환경이 나날이 악화하고 있는 은행 입장에서 절대 금리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고 예대마진에서 자유로운 선순위 인수금융은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처라는 분석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M&A 기업에 대한 선순위 대출 금리가 현재 3% 후반에서 4%대 중반까지 형성돼 있는데 이는 펀드 운용에 따른 수수료를 감안해도 여전히 매력적인 금리 수준"이라며 "통상 M&A 시 인수자 측의 지분(에쿼티) 투자분이 40~50%가량 깔리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토대로 한 부동산 대출과 마찬가지로 40~50%의 담보를 확보하고 가는 셈이라 안정성도 나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은행이 사모대출펀드에 출자할 때 자기자본(PI)을 활용하는 만큼 선순위 인수금융은 예대마진에서 자유롭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