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가치·약효 신뢰도 높아 비싸도 인기다국적 제약회사가 최초로 개발한 의약품(오리지널 약품)의 보험약가가 특허기간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는 것은 한마디로 '시장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허기간이 끝난 오리지널 약이 동일 성분의 값싼 카피(복제) 약과 경쟁하려면 가격을 낮춰야 할 것 같지만, 높은 값에도 수요가 있기 때문에 다국적 제약사들은 기존 가격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의약분업 시행 이후 오리지널 약에 대한 수요는 더 늘었다. 의사의 처방전이 공개되면서 의료기관에서 카피제품 보다는 널리 알려진 고가의 오리지널 약품 처방을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하반기 EDI(전자문서교환) 방식으로 청구된 약품비를 분석한 결과청구금액 상위 10개 약품 가운데 다국적제약사 품목이 8개를 차지했다.
일반적으로 오리지널 약의 특허기간이 끝나면 국내 제약사들은 동일한 성분의 카피제품들을 쏟아낸다.
위궤양치료제로 유명한 글락소 스미스클라인사의 '잔탁'은 카피제품만 60여종이 나와 있다. 잔탁정(150㎎)의 보험약가는 506원이지만 아주약품에서 나오는 카피약품 '라티콘정'은 49원에 불과하다. 다국적 제약사의 오리지널 약과 카피 약의 보험약가가 200% 이상 차이가 나는 품목만도 66개나 된다.
한국화이자가 지난해 전년보다 41% 증가한 1,700억원의 매출을 올려 국내 제약업계 매출순위 9위로 껑충 뛰어오른 것도 이 같은 고가처방약들의 선전 덕분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고혈압 치료제 '노바스크' 한 제품만으로 9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행 약가산정기준은 동일성분 약품이 건강보험 급여목록에 등재돼 있을 경우 후발제품은 선발품목 가격의 80% 이하로 정하고, 2개 이상 등재돼 있을 때는 최저가 이하로 정하도록 돼 있다. 카피제품이 나오면 나올수록 오리지널 약과 카피 약 사이의 보험약가 차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보건사회연구원 배은영 책임연구원은 "오리지널 약품은 특정기간 독점적으로 판매되기 때문에 의사와 소비자들이 브랜드명을 많이 기억하고 있다"며 "따라서 동일한 성분의 싼 약이 나와도 계속 오리지널 약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직접 약값을 지불하지 않고 건강보험에서 대신 지불하기 때문에 의약품가격에 크게 민감하지 않은 것도 이 같은 경향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릴리 이기섭 부사장은 "오리지널 약품가격은 특허기간이 끝나면 시장원리에 따라 내려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의약분업 시행으로 다국적 제약사의 매출이 일시적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리지널 약품의 약가가 떨어지지 않는 데는 우리나라 약가관리제도의 문제도 한 몫 하고 있다. 한번 정해진 보험약가는 사후 모니터링을 통해 약가조정이 이뤄지며, 일반적으로 차츰 내려가지만 오리지널 약품은 예외였다.
지난 99년 11월 의료기관이 실제 의약품을 거래한 가격을 조사해 이 가격대로 보험약제비를 상환하는 실거래가상환제도가 도입된 이후, 카피약품은 경쟁이 심해 의료기관에 보험약가보다 싸게 공급되는 경우가 많아 정기적인 실거래가 조사가 효과를 보고 있다.
반면 오리지널 약은 정해진 약가에 공급해도 충분한 수요가 있기 때문에 실거래가 조사가 별 효과가 없는 상황이다.
제약업계에선 동일성분일 경우 값이 싼 약을 처방하도록 유도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의사의 권리를 침해해선 안된다는 의료계의 반발에 부딪쳐 답보상태에 있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특허기간이 끝난 오리지널 약품의 약가를 3년마다 정기적으로 재평가하는 약가재평가제도 도입을 추진하기 위해 관련 고시를 규제개혁위원회에 상정했으나 아직 통과되지 않고 있다.
임웅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