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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4월 9일] '바보' 추기경의 부활
이현우 논설위원 hulee@sed.co.kr
다른 사람을 위해 내 몸, 내 목숨을 내놓는 것처럼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은 없다. 예수의 삶과 죽음, 부처의 가르침이 그랬다.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인류구원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불교에는 위법망구(爲法忘軀)라는 법어가 있다. 법을 위해 몸을 상하고 목숨을 내놓는 것도 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은 깨달음이고 부처의 가르침이다. 부처의 가르침은 중생구제다. 스님들이 손가락에 기름종이를 싸매 불에 태워 바치는 소지공양(燒指供養)이나 다비(茶毘) 장례식도 보시(布施)의 의미가 담겨있다.
金추기경 선종 후 장기기증 열풍
‘바보’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지 두 달이 다 돼간다. 지난 5일로 천주교가 정한 공식 추모기간도 끝났다. 하지만 그를 기리는 마음, 그가 남긴 사랑의 여운은 계속되고 있다. 그 동안 3만5,000여명이 묘소를 참배했으며 그 발길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김 추기경의 말을 담은 스티커 50만장을 만들어 무료배포했는데 순식간에 동이 났고 이후에도 스티커를 구하고 싶다는 요구가 쇄도해 16만여장을 추가제작하기까지 했다. 이들 가운데는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김 추기경이 남긴 감사와 사랑의 가장 큰 메아리는 아무래도 장기기증일 것이다. 열풍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캠페인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고 실적도 놀랍다. 보건복지부 직원 1,700명의 단체 기증서약을 시작으로 정부 각 부처가 앞다퉈 나섰으며 전국 주요도시를 연결하는 장기기증 캠페인 특별 생방송이 펼쳐지기도 했다. LG전자ㆍ롯데홈쇼핑ㆍ제우스 등 기업들의 참여도 확산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출가한 지 20년이 넘는 스님 40여명이 장기 및 시신기증 약속과 함께 일반인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민ㆍ관ㆍ종교ㆍ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나눔과 사랑의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3월 한달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www.donor.or.kr 02-363-2114)에는 1만1,000여명이 장기기증 등록을 했다. 지난해 같은 달의 841명보다 무려 13배나 늘어난 것으로 지난 한해 전체 기록을 넘어선 수치다. 김 추기경이 초대이사장을 지낸 천주교 한마음한몸운동본부(www.obos.or.kr 02-3789-3488)에도 1만명 가까운 기증서가 접수됐다. 장기기증의 효과와 가치는 엄청나다. 그것은 사랑과 나눔, 배려와 감사의 행위이다. 그게 확산되면 우리사회는 온정의 향기가 가득한 살 맛나는 곳이 될 것이다. 숭고한 사랑을 돈으로 따지는 게 좀 그렇지만 건강보험재정 절감효과만 해도 막대하다. 만성신부전환자의 경우 혈액투석을 해야 하는데 거기에 소요되는 요양급여비용이 1인당 연간 1,800만이라고 한다. 2007년 말 기준 만성신부전환자가 전국적으로 9만4,600여명이니 한해 1조7,000억원이 소요되는 셈이다. 장기기증이 많아지면 그만큼 의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다.
'나눔의 정신' 실천 확산돼야
김 추기경은 우리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잊고 있었던 사랑의 느낌과 가치를 일깨워줬다. 그것을 가꾸어 나가는 것은 남아있는 사람의 몫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면 그렇게 해야 한다.
김 추기경은 낮춤으로써 지극히 높아졌고 버림으로써 얻었다. 그는 바보, 그러나 위대한 바보였다. 지도층들이 검은 돈 리스트, 성상납, 성매매 등 탐욕의 비릿하고 썩은 냄새로 세상을 오염시키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의 존재가 더욱 그리워진다. 김 추기경의 육신은 땅에 묻혔으나 그가 실천한 사랑의 정신은 살아있을 때보다 더 큰 울림으로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오는 12일은 부활절이다. 김 추기경으로 인해 올해 부활의 의미는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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