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대인기술] 경제보다는 재미


오랫동안 프리랜서 강사로 활동했다. 온라인 오프라인, 대학생, 직장인, 경영자, 교사, 교수, 노인 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다. 요즘은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문화센터에서 글쓰기를 가르친다. 어린이를 상대로 한 강의는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대화형식으로 진행하며, 가능한 어린이 말을 들으려고 노력한다. 직업 가운데 하나가 강사이다 보니 남을 가르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 강의를 하고 있는 것인지 학습자를 위해 강의를 하는 것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혼란스럽기만 하다. 미리 준비된 교안에 따라 강의를 하고 학습자는 일방적으로 듣는 형식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강의 방식은 학습자보다는 오히려 교수자의 학습에 도움이 된다. 강사도 일종의 서비스업이라면 고객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동안 경험 부족으로 지식 공급자 위주의 교육을 해왔다. 그런데 세상에는 지식과 정보가 넘쳐난다. 만일 강의를 통해서도 학습자가 교수자가 옳다고 믿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섭취해야 한다면 그 강의는 틀림없이 지루해진다. 가르치는 사람이 올바르다고 믿을 뿐이지 올바른 것도 변한다. 평소에 느끼던대로 대학에서의 강의 방법을 바꿔보았다. 우선 교수자의 역할을 학습도우미로 바꾸었다. 학생 스스로 관련 과목을 학습하도록 팀을 이루어 한 학기동안 연구 과제를 주었다. 연구과제도 학생 스스로 선택하도록 했다. 이어서 과제를 바탕으로 학점을 부여하겠다고 선언했다. 학습도우미로서 나는 별다른 준비 없이 광고 영화를 틀어주거나, 최근 잘나가는 가수나 연예인 이야기를 했다. 담당 과목이 콘텐츠 마케팅이었으니까...... 한 학기동안 학습도우미인 강사보다는 학습자인 학생들이 힘들었겠지만 학기가 끝나자, 대다수의 학생들이 콘텐츠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운 유익한 강의였다고 감사 인사를 했다. 역시 강사가 가르치려 하지 않을수록 학습자는 많이 배운다. 셰익스피어의「햄릿」에서 폴로니우스는 그의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 네 자신에게 충실 하라. 그러면 밤이 낮을 따르듯 너는 다른 사람에게도 충실해 질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권고대로 농땡이는 치지 않았다. 매번 출석하여 학생들과 얼굴을 마주했다. 가르치는 것은 배우는 것이기에 가르치는 일보다는 학습 도우미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한 때는 이를 숨기기 어렵다. 이런 경우에는 수업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수업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내가 선택한 교수 방법은 좋은 것인지, 바른 선택이었는지 늘 혼란스럽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남의 영향에 의해 선택이 강요된 경우라면 혼란은 가중된다. 자신의 의지가 빠진 선택은 후회를 불러오기도 한다. 강요 없이 자유의지로 선택한 사람들은 선택에 책임을 지며, 자신이 선택한 대상에 몰입한다. 몰입은 즐거움을 준다. 진정한 즐거움이란 목표를 실제로 달성하는 것보다는 목표를 향해 착실하게 한 걸음씩 전진하면서 느끼는 것이다. 순간순간의 자신의 모습이 인생의 본질인 것이다. 그 순간 속에 희열과 감사와 설레임과 흥분을 느끼지 못한다면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물질로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려 하면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물질을 요구하게 된다. 경제성장이 목표대로 이루어지더라도 사람의 욕망은 무한정이고 자원은 한정되므로 보다 많은 사람이 상대적인 욕구불만을 느낀다. 경제가 어려우면 다른 것도 어려워지기는 하겠지만 사람을 경제적 동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도 놀이에 몰입하는 것을 보면 사람은 놀이하는 동물이다. 끊임없이 물질에 의한 만족을 추구하기 보다는 정신적으로 몰입할 대상을 찾아야 한다. 정의사회를 구현해주거나 경제를 살리는 영웅이 사회에 필요한 것은 아니다. 누구나 스스로 선택하여 자신의 인생을 창조해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거나, 사는 재미를 주는 사회가 오히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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