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흔들리는 주력산업 활로를 찾는다] <상> 한계 직면한 간판기업

선진기술에 밀리고 中에 치이고… '제2 반도체 신화'에 투자하라

성장 한계에 부딪힌 국내 대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의 생존 경쟁을 위해 친환경차 개발 집중 투자, 대대적인 인수합병(M&A) 등 새로운 먹거리 확보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현대차 울산공장의 근로자들이 ''투싼 수소연료전지차''에 연료전지 시스템을 장착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기아차



電車 이어 철강·조선·정유 등 신수종사업 찾기 고심

삼성SDI, 세계 1위 PDP 버리고 에너지·소재 올인


바이오·친환경차 등 10년 내다보고 기술개발을


브라운관 제조업체로 출발한 삼성SDI는 2000년대 들어 2차전지를 신사업으로 추진했으나 성장 속도는 더뎠다. 하지만 2010년 삼성의 5대 신수종사업으로 2차전지가 포함돼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삼성SDI는 2차전지 사업에 총 1조6,322억원의 시설투자를 단행했다. 2003년부터 2009년까지 7년간 이뤄진 시설투자(8,366억원)의 2배 가까운 금액이다. 그 결과 2003년 3,798억원에 불과하던 전지사업 매출이 지난해에는 3조3,565억원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매출 비중도 같은 기간 8%에서 67%까지 커졌다. 삼성SDI는 주력이던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사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자 연내 완전히 손을 떼는 대신 2차전지·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에너지 솔루션 사업과 소재 사업에 주력할 방침이다.

삼성SDI의 이 같은 변신은 한국 기업이 현재 처한 상황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PDP 사업에 진출하자마자 세계 시장 1위에 올랐지만 시장 환경 변화가 감지되자 이를 과감하게 버리고 성장성이 높은 친환경 에너지 사업으로 갈아타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SDI의 주력 사업 교체는 글로벌 시장에서 영원한 1등도 없고 신사업 진출을 통한 새로운 동력을 찾지 못하면 성장성과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주력업종 경쟁력 한계 봉착…신수종 사업 발굴 절실=신사업 발굴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의 숙명이다. 한국 기업들의 성장 과정도 신사업 진출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일류 기업이 될 수 있었던 것도 1980년대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것이 밑바탕이 됐다.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간판기업들이 신규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 제조업 경쟁력이 크게 향상됐고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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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들어 이 같은 흐름에 적신호가 켜졌다. 기존 주력사업의 경쟁력이 한계에 이르면서 잘나가던 간판기업들이 일제히 실적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해오던 두 간판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스마트폰 시장 포화와 수출 경쟁력 감소로 올 들어 실적이 눈에 띄게 악화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3·4분기 영업이익은 4조1,000억원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10조1,600억원)에 비해 60%가량 감소했고 현대·기아차 역시 영업이익 합계가 지난해보다 18.1% 줄어 두자릿수 감소율을 나타냈다.

국내 간판기업의 실적부진은 이들 '전차군단'에 국한되지 않고 포스코·현대중공업·SK이노베이션·LG화학 등 철강·조선·정유·화학 분야의 대표기업들에도 공통된 현상이다. 이들 업종은 글로벌 업황 침체에다 중국산 제품 공급 과잉으로 수익성이 악화일로다. 문제는 이 같은 간판기업들의 실적부진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이라는 점이다.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국의 앞선 기술력을 따라잡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인 가운데 기존의 제조업 기반도 중국이 잠식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10~20년 전의 수출 상위 품목과 현재를 비교해보면 액정디바이스(디스플레이) 정도가 추가된 정도에 불과하다"며 "대내외 경영 환경이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정부와 기업 차원의 새로운 주력 산업 육성과 신사업 진출 노력이 보다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사업 성과 미흡…장기적 안목 갖고 투자 확대해야=IMF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기업들의 신성장동력 발굴 노력이 비교적 활발한 편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의 고환율 정책과 중국 경제 성장에 따른 수요 증가로 실적이 뒷받침되자 우리 기업들이 기존 제품에 대한 설비 투자를 늘리는데 치중하고 미래 먹거리 확보 노력은 다소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신흥국 경기 회복 지연과 중국 기업의 급성장으로 경쟁력이 위기에 봉착하자 국내 기업들도 최근 들어 새 먹거리 확보를 위한 신사업 육성에 부심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 2010년 △바이오 △의료기기 △2차전지 △태양광 △발광다이오드(LED) 등 5대 신수종사업을 정하고 투자를 늘리고 있다. 현대차도 미래 자동차 시장을 주도할 친환경차 개발에 착수, 수소연료전지차를 비롯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다. 하이닉스를 인수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SK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융·복합을 통한 신성장동력 발굴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LG는 △에너지 솔루션 △친환경 자동차 부품 △리빙에코 등 3대 분야를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삼아 집중 육성에 나선 상태다.

업황 부진에 시달리는 철강·조선·정유화학 업종에서도 새 먹거리 발굴 노력이 활발하다. 포스코는 권오준 회장 취임 이후 원천소재(리튬·니켈)와 청정에너지를 신성장동력으로 선정, 연구개발(R&D)을 강화하고 있고 조선업계도 오염물질 배출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과 연비는 높이는 친환경·고효율의 '그린십(Green Ship)'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같은 신사업 육성 노력은 다소 늦은 감이 있고 아직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신사업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고 시행착오도 불가피한 만큼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반도체가 그랬듯 바이오·의료기기나 친환경차 등 외국에 비해 기술력이 부족한 분야는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기 힘들다"며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통해 단기적 성과도 내야 하지만 경쟁국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을 만큼의 기술력 확보를 위해서는 장기 투자가 필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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