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美·유럽경제 '일본식 장기불황' 공포 확산

10년물 국채금리 2% 밑으로 추락… 제로금리·소비심리 위축도 복사판<br>주식·자산 가격 붕괴에 은행 부실채도 눈덩이… 90년대 日경제 '답습'<br>경기 부양 수단 적어 "잃어버린 20년" 우려



주가급락과 지속되는 국채수익률 하락, 얼어붙는 소비심리, 속속 드러나는 은행들의 부실채권,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재정적자. 지난 1990년대 초 거품이 붕괴된 일본 경제를 뒤덮었던 장기 침체의 징후들이 20년이 지난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 고스란히 반복되면서 서구 선진국들의 경제가 일본 경제의 몰락을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감이 점차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 지금까지 세계 경제를 이끌어온 미국과 유럽 경제가 '일본화(Japanisation)'하면서 일본이 겪었던 '잃어버린 20년'의 침체 사이클로 진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과거에도 서구 선진국들이 일본 경제와 같은 몰락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경고 메시지는 수차례 제기돼왔다. 하지만 최근 미국 경제에 나타나고 있는 징후들은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 가능성이 일부 경제전문가들이 제기하는 단순한 우려를 넘어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미국과 유럽 경제를 위협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미국과 유럽 경제가 일본의 뒤를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단적인 징후는 국채금리의 움직임이다. FT는 지난 수년간 미국과 영국, 독일 등의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1988년부터 1996년까지의 일본 국채금리와 놀랍도록 유사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는 경기가 정점에 달한 1990년에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8%에 육박했다가 거품경제 붕괴와 함께 급락, 1996년에 2%를 뚫고 내려간 후로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15년 뒤인 지난 18일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약 60년 만에 처음으로 2%를 밑돌았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이것이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으로의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인 핌코를 운영하는 빌 그로스는 이 같은 국채금리 동향에 대해 "미국 경제 침체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는 것을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경기침체로 투자자들이 주식을 내버리고 안전한 국채로 몰려들면서 도쿄증시의 닛케이지수는 아직 1989년 최고점 대비 75% 수준이고 10년물 국채금리는 0.99%선에서 머물러 있다. 이밖에도 1990년대 일본 경제의 '복사판' 같은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미 국채등급 강등과 그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2년간 제로금리 유지 정책 등 최근 일련의 움직임을 봤을 때 미국이 일본과 같은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 세계 최고의 신용도를 자랑하던 일본의 등급이 하향 조정되고 경기부양을 위해 쏟아 부었던 막대한 재정은 경제를 활성화시키지는 못하고 어마어마한 재정적자만을 남겼다. 얼어붙은 소비심리 때문에 오랜 제로금리 정책도 부양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안전한 국채로 투자가 몰리면서 주식 등 자산가격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가계 소비심리 위축도 일본과 같은 침체를 예고하는 불안 요인이다. 미국과 유럽의 높은 실업률과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가계소비는 서구경제의 심각한 침체 우려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도 최근 미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소비자지출이 2008년 1ㆍ4분기부터 2011년 2ㆍ4분기까지 14분기 동안 연평균 0.2% 성장에 그쳤다고 지적하면서 글로벌 경제침체 우려를 강조한 바 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소재 스탠더드라이프인베스트먼트의 글로벌전략 담당 앤드류 밀리건은 일본을 장기 침체로 내몬 요인들로 ▦주식 및 자산가격 붕괴 ▦부실화한 좀비 은행 ▦디플레이션 ▦제로금리 ▦정치적 교착 ▦저출산 고령화 ▦GDP 대비 높은 재정적자 비율 등을 꼽으면서 "서구 경제도 이 모든 요인들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있을 미 FRB의 추가 부양책 이후 경제지표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미국이 일본과 같은 경기하강으로 돌입할 것이라는 경고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과거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이나 유럽 역시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수단이 많지는 않아 보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차 양적완화는 소비와 투자 등 실물경제는 끌어올리지 못하고 자산가격 상승을 일으켜 소비자의 실질소득을 감소시키는 결과만 초래했다"며 "약달러 정책이나 인플레이션 용인책도 녹록지 않아 보이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잃어버린 20년'에 빠져들 리스크는 점차 커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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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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