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이처럼 일상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둔감하다. 의자는 적어도 1만년 이상 우리 주면에 존재해왔다. 때문에 사람들은 의자에 대해 굳이 무엇을 물으려 하지 않는다.아랍인들은 편지를 쓸때 책상다리를 하고 바닥에 앉는다. 중국인들은 쪼그리고 앉아서 버스를 기다린다. 일본여자들은 먹을 때 단정하게 무릎을 끓는다. 그렇지만 서양인들은 의자없이 그냥 바닥에 앉으라고 하면 당황한다. 서양은 의자문화권이 아닌 사람들을 미개하다고 생각하고 의자를 전파하려고 열심이며, 동양인들은 그것을 진보의 상징으로 열렬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태초에는 의자가 없었다. 인간은 걷고, 서고, 뛰고,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도록 즉 움직이도록 창조되었다. 푹신한 소파에 몸을 파묻는 것은 쉬는 것이 아니라 온몸을 혹사시키는 노동이다.
갤런 크랜츠 버클리대학 건축학과 교수가 쓴 「의자」는 쪼그리고 앉지 못하는 서양인들의 후회와 반성이자 서양문물을 진보의 상징처럼 무조건 받아들이는 우리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의자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한다. 의자는 너무나 흔해서 인류의 탄생부터 있어왔으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의자는 분명 서구문화의 산물이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산업혁명 이후 보편화된 기구에 불과하다.
또한 저자는 의자에는 특별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의자는 고대로부터 신분이나 권력의 상징이다. 부시가 미국 부통령이었을 때, 그는 레이건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느라 자리를 비워도 대통령의 의자에는 절대로 앉지 않았다고 한다. 신분과 권력의 상징이었던 의자는 18기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노동의 현장으로 들어오게 된다.
『자리에 가서 앉아라』 『똑바로 앉아라』 『가만히 있어라』 이것은 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이 맨 처음 듣는 말이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게되는 말이다. 아이들은 원래 의자에 앉는 걸 몹시 싫어한다. 그럼에도 굳이 아이들을 줄을 맞추어 의자에 앉히려는 것은 질서와 통제를 위해서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하요 아이코프는 『의자는 온순한 사람들이 비판적이거나 정치적으로 적극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진정제의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이러한 수동성으로 이끄는 사회화 과정이 일찍이 학교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띄어다니면서 놀고 활동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개개인을 위한 다양한 교육환경이 거론되고 있지만 모든 아이들은 똑같은 책상과 의자를 사용한다. 아이들의 시거리는 어른 보다 훨씬 짧기 때문에 책을 보거나 필기할 때 몸을 앞으로 구부리게 된다. 그러면서 의자에 맞춰 골격들이 변형되고 심하게는 내부 기관들이 압박을 받아 오랜 세월동안 의자에 길들여진 몸은 서서히 질병들을 길러낸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면 의자가 없으면 앉지 못하게 된다. 앉을수 있던 근육들이 약해지거나 퇴화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예로 들면서 저자는 우리 몸을 왜곡시키는 의자를 문명의 잔인한 도구라고 단언한다.
계속 의자에 앉을 생각을 버리고 인류는 이제 어떻게 하면 의자로부터 자유롭게 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김문호 옮김. 지호 펴냄. 1만2.000원. 【이용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