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적정기술과 ICT의 지향점

첨단기술 소외된 빈곤층 고객 맞춤… 저렴하고 제약 적은 적정기술 눈길

'인간에 필요한 기술' 목표점 같아

고부가 기술 개발에만 몰두 말고 무상·저가 활용법도 함께 고민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논어 선진편에 나오는 말이다. 직역하면 '지나친 것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의미로 미래 첨단기술을 지향하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도 주의 깊게 새겨야 한다.

스마트 디바이스 등의 첨단 기술은 그에 합당한 가격을 지불해야만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지구상 인류 가운데 상당수는 첨단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인들을 비롯해 하루 소득이 1,290원 이하인 절대 빈곤층 인구는 전 세계적으로 12억명에 달한다. 신흥 ICT 강국으로 부상 중인 중국에서도 절대 빈곤층은 1억5,600만명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썩 좋지만은 않다. 우리나라의 빈곤율은 16%를 넘는다. 국민 6명 가운데 1명은 빈곤층이라는 소리다. 이들도 역시 첨단기술에서 소외된다.


'적정기술'이라는 개념도 이들 때문에 생겨났다. 적정기술은 기술이 사용되는 사회 공동체의 정치적·문화적·환경적 조건을 고려해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기술이다. 인간 삶의 질을 궁극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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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중간기술'이라는 용어가 사용됐다. 중간기술은 영국 경제학자인 에른스트 슈마허가 1960년대 처음 사용한 용어로 과거의 원시적인 기술보다는 훨씬 우수하지만 선진국의 거대 기술에 비하면 소박한 기술을 뜻한다. 쉽게 말하면 첨단기술에 비해 훨씬 값싸고, 제약이 적으며, 인간적인 기술이다. 중간기술 개념은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기술 연구와 결합하면서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적정기술 개념으로 발전했다. 적정기술 개념은 사회운동·디자인·연구개발 등으로 영역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근래에는 세계적인 빈곤퇴치 운동가이자 사업가인 폴 폴락 등의 주장에 따라 적정기술의 제공방식이 기존의 기부·자선에서 비즈니스로 옮겨간다. 폴락은 저서인 '빈곤으로부터의 탈출'과 '소외된 90%를 위한 비즈니스'를 통해 빈곤층을 자선의 대상이 아니라 고객으로 바라보고 그들이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지불할 수 있는 금액과 구매의도를 파악함으로써 적절한 가격의 제품을 디자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적정기술은 단지 이론이나 개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성공 사례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적정기술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저가의 정수장치, 현지재료 조달방식의 난방기구, 식수 운반통 등은 이미 널리 활용되고 있다.

적정기술은 ICT 분야에서도 일부 성공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매사추세츠공대(MIT)·구글·AMD 등이 제작해 제 3세계 어린이들에게 공급하는 'XO-1 노트북'이 대표적이다. 이 노트북은 저렴할 뿐만 아니라 태양열로 충전할 수 있고 안드로이드와 리눅스 기반의 인터페이스도 제공한다. 하버드대 학생들이 개발한 '소켓볼'은 빈곤층 어린이가 가지고 놀면서 전기를 생산·저장해 전구의 불을 밝히고 스마트폰에도 연결할 수 있는 축구공이다.

얼핏 생각하면 첨단기술과 적정기술은 병립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첨단기술이나 적정기술이나 인간다운, 인간에게 필요한 기술이라는 점에서 지향점은 같다. 지금까지 우리가 고부가가치의 첨단기술 개발에만 초점을 맞춰왔다면 이제부터라도 소외된 이들을 위한 적정기술 개발, 이미 개발된 기술의 무상·저가활용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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