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15일] 자원민족주의 선언

“민족주권국가로서 이란은 어떤 산업도 국유화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어떤 국제기관도 이를 조사할 자격이 없다.” 1951년 총리로 선출된 이란 국민전선의 지도자 모하메드 모사데그는 석유국유화 법안을 승인, 중동에서 최초로 석유자원의 자주적 관리를 주장한다. 모사데그는 20세기 초 이란의 민족주의 지도자로 자원민족주의 운동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한 인물이다. 이란은 석유 매장량 세계 5위, 천연가스 매장량은 세계 2위로 20세기 초 중동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된 나라.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영국의 반식민 상태였던 이란은 석유채굴권을 영국의 앵글로페르시아 석유회사에 넘긴다. 그러나 1912년부터 1950년까지 석유개발에 따른 이란의 몫이 10%에 불과하자 이란 내부의 불만이 점차 고조되며 석유 국유화론도 강하게 대두된다. 이런 와중에 친영파로 석유 국유화에 반대하던 알리 라즈말라 총리가 1951년 3월 7일 암살된다. 이란 의회는 모사데그를 총리로 선출하고 모사데그는 석유 국유화 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이란국영석유회사(NIOC)를 설립한다. 영국도 이에 맞서 “이란산 석유 판매를 방해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한다”고 발표한다. 국제석유자본도 이에 화답, 이란 석유의 취급을 거부하자 석유수출에 의존해온 이란 경제는 큰 타격을 입는다. 외화가 부족해지고 수입이 감소하자 국민 사이에서는 반 모사데그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이틈을 놓칠세라 미국이 깊숙이 개입한다. 미국의 관심은 영국과 이란의 분쟁으로 모사데그 정권이 붕괴하면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이란 석유에 대한 발언권에 있었다. 영국은 미국과 손잡고 모사데그 축출계획을 추진, 1953년 8월 모사데그 정권을 결국 무너뜨린다. 세계의 보안관을 자처하며 석유를 위해서라면 전쟁도 마다하지 않는 미국의 입김과 훈수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집요하고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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