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일본:1/R&D투자 통해 「엔고파고」 이겼다(경제를 살리자)

◎「버블붕괴」 수출로 타개… 해마다 무역흑자 “휘파람”/자동차 등 해외생산늘려 「세계일류」 수성지난 95년 4월10일 일본의 엔화는 동경외환시장에서 한때 1달러당 80.15엔을 기록, 전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1년전의 1백4.95엔에서 무려 24.80엔이나 폭등한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슈퍼 엔고시대」로 기록되는 이 해에 일본은 4천4백29억달러어치를 수출하고 3천3백61억달러어치를 수입, 1천68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보았다. 지난해에도 일본은 수출 4천1백10억달러에 수입 3천4백91억달러로 6백9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같은해 우리나라가 수출 1천2백97억달러, 수입 1천5백3억달러로 2백4억달러의 적자를 본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일본은 지난 90년부터 소위 「비누거품」으로 일컬어지는 「버블 경제」가 한풀 벗겨지면서 극심한 불황에 시달려왔다. 여기에 계속되는 엔고행진, 주가 및 땅값폭락으로 도산을 모르는 일본기업들의 신화도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일본은 이같은 어려움을 수출로 커버했다.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이 1백20엔대로 진입한 90년 이후 일본의 무역수지는 90년 5백21억달러, 91년 7백78억달러, 92년 1천66억달러, 93년 1천2백억달러, 94년 1천5백억달러로 엄청난 흑자의 연속이었다. 그러면 일본의 이같은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일본의 주식시장 관계자들은 국제경쟁력을 갖춘 일본 기업들의 공통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는 시장에 귀를 기울이고 영구혁명에 도전하는 자세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영구혁명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신기술 개발로 다른 기업들보다 앞서간다는 뜻이다. 둘째는 시대를 넘어서는 원리원칙이 있으며 이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영구혁명은 기업이 성장을 계속하는데 필요조건이지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일관해서 기업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나침반」이 있어야 한다는 풀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요즘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기업이 하나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전혀 생소한 이 회사는 「롬」이라는 반도체 메이커. 교토(경도)에 본사가 있는 롬은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의 닛케이(일경) 비즈니스가 지난해 연말 동경증권거래소 1부에 상장된 1천2백44개사를 대상으로 5년간 평균 경영성과를 분석한 결과 효율성이 가장 높은 회사로 뽑혔다. 롬은 일본의 주식시장에서 기업의 우량 여부를 따지는 계측단위인 「주식의 투자수익률」(ROR·Rate Of Return)이 연간 28.65%나 돼 1위를 차지한 것이다. ROR는 어느 회사의 주식에 투자해서 얼마나 수익을 올릴 수 있느냐 하는 지표. 동경증권거래소 1부 상장기업의 평균 ROR가 3.05%에 불과하며 2위인 후도(불동)건설이 25.40%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롬의 ROR는 대단한 것이다. 참고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기업들의 ROR는 이와이 전자가 13.76%(20위), 도요타(풍전)자동차 13.30%(22위), 캐논 11.39%(34위), 히타치(일립)전자 8.32%(83위) 등이며 소니는 1백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도대체 롬은 어떤 회사인가. 롬의 창업자는 현사장인 사토 겐이치로(좌등연일랑·65). 지난 54년 교토의 리츠메이칸(립명관)대를 졸업한 그는 저항기 특허를 취득한 후 롬의 전신인 동양전구제작소를 설립한다.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연간 매출이 15억엔에 달할 무렵인 67년 IC(집적회로)시대의 출현을 예측, 3년간 10억엔의 연구비를 투자한다. 당시 큰 전자 메이커의 연구비도 연간 20억∼50억엔 수준이었으니 실로 엄청난 투자였다. 그는 71년에 일본계 반도체 메이커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 개발거점을 마련, 미국의 최첨단 기술을 도입한다. 지난해의 매출은 2천9백22억엔. 반도체 메이커로선 액수가 많은 게 아니지만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은 24.8%로서 히타치·도시바(동지)·미쓰비시(삼릉)·후지쓰(부사통) 등 반도체 메이커의 평균 19.2%보다 훨씬 높다. 사토 사장은 지난해 1월 총사원 1만8천명 가운데 6백명이 참석한 신년하례식에서 신상품을 개발한 사원에게 1만엔권 다발로 현금 1천만엔을 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회사는 지난 66년부터 능력급제도를 도입, 급여 가운데 50%는 사정에 의해 결정한다. 이 회사의 또 하나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사원들에 대한 배려. 본사는 교토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에 있지만 회사 주변에 전사원이 모두 주차할 수 있는 8백대분의 주차장을 완비해놓고 있다. 주차장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무사고 무위반 차량으로 제한된다. 사토 사장은 회사구내식당에서 공장의 종업원들과 같은 메뉴로 식사하면서 3평짜리 사장실을 언제나 개방해놓고 있다. 일본이 수출로 일어설 수 있게 된데는 자동차산업이 견인차 역할을 했다. 지난 95년 전세계에서 생산된 자동차(4륜차)는 4천9백81만대. 이 가운데 일본에서 생산된 자동차는 20.5%인 1천20만대에 달한다. 일본은 생산된 차량의 37.2%인 3백79만대를 수출(수출액 7백72억달러), 그해 총수출액의 17.4%를 벌어들였다. 품목별로 볼 때 기계류(24.1%)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이다. 자동차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근로자수만도 7백13만명으로 취업인구 10명 중 1명꼴인 셈이다. 따라서 자동차산업은 일본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받침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일본 자동차 산업의 생명선이랄 수 있는 수출 증대에는 앞으로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 엔고와 21세기 자동차산업의 주전장인 동남아시아시장이 동남아 각국의 경제성장에 힘입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일본의 자동차업계는 현지 생산체제에 들어간지 오래다.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는 도요타 자동차가 신세계화 대공세를 펴고 있는 것도 엔고에 대처한 준비다. 최근 일본의 한 조사기관은 기업들을 상대로 엔고에 대한 전략을 설문조사한 적이 있다. 이에대해 조사대상의 85%는 엔화가 현재의 1달러당 1백20엔대에서 90∼1백엔대까지 강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또 5%는 80엔대 이하의 초강세를 예측했다. 그래서 지금 일본의 기업들은 또다시 슈퍼 엔고에 대비, 살아남기 전략을 마련하는데 여념이 없다.<동경=정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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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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