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설 60년] 국가경제의 기둥 건설산업 경부고속道는 '한강의 기적' 일등공신 김창익 기자 window@sed.co.kr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결심한 것은 지난 64년 서독 방문 때였다. 하인리히 뤼브케 당시 서독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문한 박 전 대통령은 ‘아우토반’을 둘러보고 전율을 느꼈다. ‘라인강의 기적’으로 대변되는 서독의 전후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아우토반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후 4년 뒤인 68년 2월1일 428㎞에 이르는 경부고속도로 대공사의 첫 삽을 뜨게 됐다. 고속도로 건설비는 총 430억원. 당시 1년 예산의 4분의1가량인 24%에 달하는 막대한 액수였다. 나라 살림의 4분의1을 쏟아붓는 대공사가 가능했던 것은 경제발전을 향한 사회적인 열망 때문이었다. 당시는 새마을운동과 함께 너나 없이‘잘살아 보세’라는 구호를 외칠 때였다. 공사에 참여했던 3사 가운데 하나인 삼부토건의 정진우 사장은 “400㎞가 넘는 고속도로 공사를 단 2년 만에 끝낸 것은 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며 “박 전 대통령의 추진력이 주효했지만 경제발전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경부고속도로는 아우토반이 그랬듯이 ‘한강의 기적’의 원동력이 됐다. 70년 완공 후 30년 간 물류비용 절감효과만도 9조원에 달하고 그 밖의 유무형 효과를 생각하면 경부고속도로가 한국 경제발전의 1등 공신이라는 데 토를 다는 사람은 없다. 경부고속도로가 상징하는 대로 지난 60년 간 건설산업은 한국 경제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정 사장은 “최근 들어 비중이 다소 줄어들기는 했지만 건설산업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줄곧 10~20% 정도를 유지해왔다”며 “다른 산업에 미치는 간접적인 파급효과까지 생각하면 건설산업의 영향력을 빼놓고는 한국 경제를 얘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7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국내 건설업체들의 해외 진출은 어려웠던 국내 경제에 가뭄 속의 단비 같은 역할을 했다. 74년 1차 오일쇼크로 국내 경제는 물가상승과 실업증가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중동 진출 1호 업체인 대림산업의 나종원 상무는 “70년대 건설사들의 중동 진출은 달러벌이 외에도 일자리 창출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현대건설이 사우디 진출 다음해인 76년 따낸 주베일 산업항 수주액은 9억3,000만달러였다. 이는 당시 예산의 25%에 달하는 액수로 외환보유 부족을 놓고 고민하던 박 전 대통령이 국내로 들어오는 수주액을 직접 확인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83년 동아건설이 따낸 리비아 대수로 공사 수주액(1차) ‘37억달러’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규모였다. 리비아 대수로 1차 공사 수주액과 관련해 극적인 스토리가 하나 있다. 83년 6월3일 리비아 측은 동아건설과 가계약을 맺기 전 최원석 회장과 최종 면담을 요청했다. 서울에서 이뤄진 이 면담에서 리비아 측은 공사금액 ‘1억달러’를 깎아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최 회장은 “1억달러를 절약해 평범한 공사로 남길지, 1억달러를 더 투자해 토목건설사에 남는 작품으로 만들지 결정하라”는 말로 단호히 리비아 측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후 건설비용 절감에 대한 리비아 측의 요구는 더 이상 없었다고 한다. 동아건설이 따낸 리비아 대수로 공사는 90년 수주한 2차 공사까지 합치면 수주액이 총 103억달러로 단일사업 수주 사상 아직까지 최대 규모로 기록돼 있다. 건설업체들이 해외 진출 과정에서 쌓아올린 ‘이미지’도 한국 경제 발전에 한몫하는 요인이다.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88층 쌍둥이 빌딩인 페트로나스타워는 한일 건설업체 간 라이벌전의 무대였다. 한쪽은 삼성건설이, 다른 한쪽은 일본 업체가 각각 수주, 한일 간 건설기술을 겨룬 최초의 맞대결이었기 때문이다. 95년 12월2일 이 공사에서 삼성건설은 일본 업체보다 마지막층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일주일 앞서 끝내 대외신인도를 높였다. 이후 삼성건설에는 세계 무대에서 ‘믿을 수 있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이어 준공될 경우 세계 최고층(160층, 700m 이상)으로 기록될 버즈두바이를 수주할 수 있었다. 이상대 삼성물산 사장은 “버즈두바이 수주 당시 발주처인 두바이의 이마르사 측에서는 ‘한국 업체(삼성건설)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한국 경제에 대한 건설산업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도 많다고 지적됐다. 정 삼부토건 사장은 “지금은 개인이건 기업이건 국가경제에 공헌한다는 대전제하에 희생할 때는 지났다. 이익이 있어야 사업에 뛰어들 때”라며 “주택사업 비중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정책의 초점이 기업들이 의욕적으로 사업할 수 있는 쪽으로 맞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종학 현대건설 부사장도 “일본과 중국은 지금도 공항과 항만ㆍ도로 등 사회적 인프라 확충에 열을 올리는데 최근 국내에서는 대규모 토목공사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며 “신성장 동력은 다른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국 건설시장 규모, 3,000억서 152兆로 30년새 480배 성장 한국 경제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막대하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한국 건설시장 규모는 지난 73년 3,000억원에서 2005년 152조원으로 무려 480배나 성장했다. 연평균 21%가 넘는 고성장을 지속한 셈이다. 이 같은 건설업 성장은 생산과 고용 측면에서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끼쳤다. 지난 60년 간 지역별 생산유발 효과면에서 건설업은 교육ㆍ보건ㆍ도소매업ㆍ국방ㆍ행정ㆍ금융 등 총 28개 업종 중 영남지역(2위)을 제외하고 전지역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전산업 생산유발 효과 중 건설업의 비중은 지역별로 11.5~22.7%를 나타냈다. 고용유발 효과면에서는 건설업이 28개 업종 중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건설업의 영향력은 90년대 이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10%를 웃돌았던 국내총생산(GDP)에서 건설업 생산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6.8%로 91년 이후 지속적을 감소해왔다. 최고 23.4%에 달했던 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 역시 계속 하락해 2006년에는 15.4%로 낮아졌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건설업 비중 축소 이유를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삭감, 대형 국책사업 감소, 규제강화 등에서 찾고 있다. 김종학 현대건설 부사장은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 건설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성장 위주의 정부 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분배정책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정부가 도로ㆍ항만 등 대형 국책사업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취약한 기술경쟁력도 건설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꼭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됐다. 건단련에 따르면 국내 건설기술 수준은 선진국의 67%로 이는 기술개발보다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단순시공 위주의 외형적 성장에 주력할 결과로 분석됐다. 업계에서도 최근 이 같은 상황에 대한 자기반성과 개선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나종원 대림산업 상무는 “국내 업체들이 설계와 구매ㆍ시동을 동시에 진행하는 일괄건설(EPC) 방식으로 해외 수주를 따낸 지 불과 10년 정도 됐다. 하지만 원천기술에 대한 투자ㆍ개발이 없다면 이 또한 10년을 가기가 힘들 것이다. 인도나 중국 업체들의 추격으로 곧 한국 업체들의 설땅이 없어질 것이다”라며 “한국 건설이 경제성장의 중추적 엔진 역할을 지속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첨단기술을 차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해외 원천기술 보유 업체에 대한 지분투자나 인수를 통해 기술을 가져오는 것도 대안”이라며 “해외 사업의 수익에 대해 세금을 면해주는 등 정부 정책이 이를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진우 삼부토건 사장도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국내 건설업체들이 얻은 것은 해외 차관으로 들여온 첨단 설비와 기술”이라며 “경제성장의 핵심 동력인 건설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입력시간 : 2007/07/05 1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