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끊이지 않는 금융사고 5대 원인

최수현(왼쪽) 금융감독원장이 지난해 5월 주요 금융지주회사 회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업 구조조정 등에 대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이쯤 되면 '금융사고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금융산업의 선진화를 외치기는커녕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대형사고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고 있다. 이 정도면 '고구마 줄기처럼 나온다'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다. 내용 또한 개인정보 유출과 대출 사기사건, 허위증명서 발급 등 선진 금융기관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왜 이런 상황까지 몰린 것일까. 금융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대형 사고가 줄이어 터지는 것은 금융시스템 자체에 구조적 모순이 내재돼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금융사고를 차단하기 위한 접근방법 역시 체계적이어야 한다는 소리다. 금융지주사의 한 고위관계자는 "현재 벌어지는 각종 사고는 개인 비리로 치부하기보다는 우리 금융산업의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며 "압축성장이 양극화 등 한국 경제의 왜곡된 상황을 초래했듯이 금융 부문 또한 대규모 구조조정의 파고를 넘으면서 하드웨어에 집중한 나머지 소프트웨어의 수술에 소홀한 것이 지금의 대형사고로 이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1> 잇단 M&A 거치며 화학적 통합 안돼… 'IMF 상처' 고름 돼 터졌다


지난 1997년 IMF 체제 이후 정부 당국은 부실기업들을 줄지어 퇴출시켰다. 금융회사들도 줄줄이 문을 닫거나 다른 곳에 피인수됐다. 이 때문에 외국인들은 우리 금융산업을 '인수합병(M&A)의 역사'라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현재의 금융질서는 종금사 사태, 외환위기, 카드대란 등 굵직한 금융사건을 거치면서 완성됐다.

그러나 합병의 역사는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 퇴출 금융회사의 직원들이 다른 곳으로 피인수되면서 인수회사의 조직 내부 깊숙이까지 안착하지 못한 것이다. 물리적 통합은 이뤘으되 화학적 결합은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는 셈이다. 이는 대형 금융회사들의 내부통제에 심각한 사각지대를 만들었다.

시중은행에서 암묵적으로 진행되는 채널 안배 인사정책이 대표적 예다. 국민은행 내부에만 3개 노동조합이 존재하고 우리은행에서는 상업은행 출신과 한일은행 출신이 탁구공을 주고받듯 주요 보직을 돌려 맡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사정책에서 우선순위가 돼야 하는 실력이 뒷전으로 밀리고 그 자리를 정실과 채널의식이 차지하다 보니 내부통제가 약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한 전직 시중은행장은 "고객 돈 횡령, 서류 위조, 도쿄지점 부당대출 등의 사건들이 주로 M&A가 이뤄진 은행들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2> 금융상품 후진적 유통구조로 위험관리 안돼

우리 금융산업은 외환위기 이후 첨단 금융상품들을 줄줄이 들여왔다. 듣도 보도 못했던 첨단 금융상품들이 쏟아졌다. 금융회사들은 파생금융상품을 별다른 설명 없이 고객들에게 추천했고 고리의 대우 회사채와 2000년대 증시 활황 속에서 현대증권의 '바이코리아' 열풍에 취한 투자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고금리상품에 돈을 집어넣었다. 동양과 저축은행 사태 등은 이런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고들의 근본원인 중 하나로 후진적 금융상품 유통구조를 꼽는다. 금융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도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대출모집인·가맹점모집인 등에서 금융사고가 잇따라 터지고 있는 이유다.

최근 5년간 금융산업에서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사고를 추적해보면 그러한 양상이 나타난다. 2011년 현대캐피탈·농협금융지주에서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사건은 해커의 소행이었다.

이후 삼성·하나SK·KB국민·롯데·농협카드 등에서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사고는 회사 업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직원들에 의해 발생했다. 최근에는 대출모집인·밴(VAN·결제대행업체)대리점 등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이날 씨티캐피탈 등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고가 전해졌는데 이는 대출모집인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금융산업의 기본인 상품을 판매하는 데 위험관리나 시스템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팔려왔고 이를 제어할 시스템 자체가 없었다는 얘기다.


<3> 권위 잃은 금융감독당국 令 서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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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14일 간부회의에서 "최근 크고 작은 금융사고가 연이어 발생해 금융산업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데 대해 매우 개탄스럽다"며 "금융사 경영진은 기존의 그릇된 조직문화와 업무 방식을 청산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 관계자들은 금융 당국 수장의 이 같은 발언에 동의하면서도 씁쓰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는 현재 금융 당국이 마주한 현주소가 반영돼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우리에게 책임을 묻고 개선 방안을 요구하는 것은 좋지만 갑을관계의 맨 꼭대기에 있는 금융 당국부터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권위가 살아난다"며 "감독원 팀장급 간부가 1조원대 사기대출의 배후에 있었던 게 드러났는데 이에 대한 반성부터 해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사고에 대한 책임을 금융사에 되묻기 전에 금융 당국 또한 감독 체계 전반에 대해 원점에서 재검토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4> 정치금융 갈수록 심해져 지배구조 왜곡

왜곡된 지배구조도 금융사고를 부채질하는 원인이다. 논공행상에 따라 치밀하게 이뤄져야 하는 인사가 시혜·특혜의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금융사고의 빌미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한 금융지주사는 계열사 인사를 실시하면서 저축은행 대표를 지냈던 인사를 은행 지점장으로 발령 냈다. 금융지주 포트폴리오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과도한 비중을 감안할 때 통상 계열사 대표는 은행 본부장급으로 치환된다. 해당 지주사가 이 같은 관행을 무시하고 은행 지점장으로 하향인사를 실시한 것은 전임 회장의 특혜인사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임 회장 시절에 잘나가던 인사가 회장이 바뀌었다는 이유 하나로 '좌천'되는 악순환이 존재하는 한 줄서기의 폐단이 사라지기는 힘들다고 금융 원로들은 지적한다.

도쿄지점 사태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과거 출세 수단으로 활용되던 도쿄지점장 자리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특혜인사의 수단으로 변질됐다. 활용의 성격은 달라졌지만 그 안에 흐르는 정실인사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특혜에는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는 것을 감안할 때 도쿄지점 리베이트 및 비자금 조성 의혹은 자연스러운 부산물인 셈이다.

<5> 매뉴얼 없는 수습책에 초기대응 주먹구구

금융사고에 대한 원칙 없는 대처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금융사고에 대한 초동대응이 여론을 한껏 의식한 채 진행된다. 동일한 사안인데도 여론의 향배가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따라 처벌 강도가 달라진다. 사고 수습이 이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다 보니 원칙은 사라졌다.

2011년 한 대형 캐피털회사에서 고객정보 해킹사건이 발생했다. 175만명의 정보가 유출됐다. 회당 회사 최고경영자(CEO)는 중징계(문책경고)를 통보 받았다. 그러나 경징계(주의적 경고)로 낮아졌다. 3년 후 KB국민·롯데·농협카드 등 3개 카드사에서 1억건이 넘는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두 달도 되지 않아 3개 카드사 CEO는 모두 짐을 쌌다.

피해 규모가 다르지만 두 사건은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틀에서 봤을 때 사건의 경중은 같다. 그러나 처벌 수위는 극단을 달렸다.

한 대형 카드사 고위관계자는 "만약 2011년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터졌을 때 CEO 파면 같은 중징계가 나왔다면 금융사들의 대처도 달라졌을 것"이라며 "금융사고에 대한 처벌이 정황논리로 이뤄지다 보니 금융사 역시 소나기는 피하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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