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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베이컨 덕에 완성된 들뢰즈 존재론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김범수 외 10명 지음, 알렙 펴냄)


영국의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프란시스 베이컨은 초상화를 그리며 얼굴을 해체시켰듯이 항상 자신의 그림에서 형상을 해체시킨다. 이를 두고 김범수 숭실대 교수는 "이것은 가장 감각적인 상태를 구현하는 것"이라며 베이컨의 그림에서 "왜 얼굴이 일그러지는가?"라고 다시 묻는다. 여기에 답하려면 들뢰즈의 철학에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 김 교수는 들뢰즈가 '감각은 심층에서 방출된다'고 말한 점을 강조하면서 "베이컨은 새로운 감각을 구현하는 것으로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찌그러진 모습으로 형상화했다"고 설명한다.


김범수, 전호근, 현남숙 등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소속 철학자 11명이 명화 속에 숨겨진 철학 이론을 탐구했다. 하이데거가 반 고흐의 '구두 한 켤레'를 보고 사물이란 무엇인지 사유했고, 푸코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서 영감을 얻어 인간의 위치를 자각했으며, 들뢰즈는 베이컨의 '자화상' 덕택에 존재론을 완성하는 등 미술이 철학에 기여한 사례를 알기 쉽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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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통해 조선시대 불멸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는 전호근 경희대 교수의 주장도 눈길을 끈다. 전 교수는 "조선시대 불멸의 정신은 성리학의 '리(理)'이며 이것이 사대부의 정신이었는데, 그 마지막 정신이 '세한도'에 녹아 있다"며 "추사는 그림만을 잘 그리는 제자보다는 먹이 스며들 듯 정신이 깃든 문자향을 드러낸 제자를 사랑했는데 그 이유는 그 어느 것보다 불멸의 정신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저자들은 서문에서 "책 한 권보다 그림 한 장의 충격과 경탄이 더 강렬한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철학은 그림의 강렬한 느낌에 다시 언어를 부여해 그림이 스스로 말하게 한다"고 강조한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그림에 내재한 삶과 사회에 대한 고민과 영감은 그래서 철학과 만날 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1만 7,000원.


정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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