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호그룹/도덕­보수 양축 ‘정도경영’ 실천(재벌)

◎4형제 우애 돈독 “재계모범생” 불려/정보통신·우주항공사업 진출 추진/“호남기업 탈피” 채용·승진서 지역안배 철저히금호그룹이 올해초 정부가 추진한 비장비제조업체군의 PCS(개인휴대통신)사업권자 선정에 나섰을 때의 뒷이야기 한토막. 이 분야에서 금호와 한솔그룹이 치열한 경쟁을 벌일 때 경쟁자이던 한솔의 뇌물사건이 불거져 나왔다. 한솔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고위인사에게 거액의 뇌물을 준 사실이 밝혀져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이다. 당시 정부는 사업자 선정의 최대기준으로 기업의 도덕성을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 사건은 한솔에 치명적인 타격으로 비춰졌다. 당연히 이를 알린 사람이 누구냐에 관심이 쏠렸고, 재계는 금호를 「심증이 가는 기업」 0순위로 올려 놓았다. 그러나 금호는 이같은 혐의에서 쉽게 벗어났다. 이를 빌미로 경쟁에서 유리한 입지를 구축하겠다는 행동도 없었고, 재계 전체적으로 「금호는 그런 일을 꾸밀 그룹이 아니다」는 분위기가 확산된 것. 한솔측도 금호의 경영 스타일을 감안, 의심의 눈길을 이내 철수했다. 금호는 「도덕그룹」으로 통한다. 「재계의 모범생」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직원들도 웬만해선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다. 우리나라 재벌그룹의 기업문화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변수의 하나인 그룹총수의 경영스타일을 봐도 도덕경영의 면모를 읽는게 어렵지 않다. 지난 4월 회장직을 미련없이 동생인 박정구 회장에게 물려준 박성용 명예회장은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출신으로 정도경영을 경영의 모토로 삼아왔다. 『선친은 「정」에 대한 신념이 강했다. 나도 이런점을 회장에 오르는 동생에게 강조하고 싶다』는게 박명예회장의 이임론이었다. 박명예회장은 현역시절 기업의 문화활동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은퇴후에는 서울 종로에 국내 최대, 최고급수준의 콘서트홀을 건설, 국민문화향상에 기여한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1천5백석 규모로 5백억원 정도를 투입할 예정이다. 사실 건설비보다도 운영비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1백억원의 운영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는게 그룹관계자의 설명이다. 삼성의 호암 아트홀이 매년 20억∼30억원씩을 그룹측으로부터 지원받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금호콘서트홀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최근 사업다각화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 있는 마당에 매년 적자를 보는 음악당을 「왜 짓느냐」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박명예회장의 의지는 확고하다. 『시민들의 문화의식 고양을 위해 이 정도 음악당은 국내에 하나 정도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현실적 이익만을 좇아 가볍게 움직이지 않는 기업풍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뒤를 이어 회장에 오른 박정구 회장도 의를 앞세운 선이 굵은 경영인으로 정평이 나있다. 따라서 그동안 금호를 지배해온 「도덕 교과서대로 산다」는 경영방식은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룹이름을 금호로 정하는 과정이나 형제들이 모두 경영에 참여, 화합경영을 보이고 있는 것도 금호의 문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금호는 창업자인 고 박인천 회장의 아호다. 회사가 막 성장하기 시작하자 아들들이 모여 『아버지가 일군회사니까 아버지 이름을 써야한다』며 호를 그룹명칭으로 쓰기로했다. 금호 4형제들의 우애도 널리 알려진 사실. 금호는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의 5남3녀중 막내아들인 종구씨(아주대교수)를 제외하고 박명예회장, 박회장과 박삼구 아시아나항공사장, 박찬구 회장부속실사장 등이 모두 경영에 참여하고 있으나 형제간 내분은 한번도 없어 화합경영으로 소문나 있다. 『몇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자산은 공동분배하고 개인사업은 안하며 새사업은 4형제가 똑같은 지분을 나눈다는 것입니다. 형제간에 싸우는 것처럼 불효가 어디 있습니까.』(박성용 명예회장) 이에따라 계열사 지분도 4형제가 엇비슷하다. 재벌그룹 회장이 자발적으로 동생에게 경영권을 넘겨준 것도 국내 기업풍토상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국내의 대표적 호남기업인 금호는 그러나 창업이후 지속된 정부의 지역적 차별정책을 감수하다보니 「잘 드러나지 않는 문화」가 깊게 배어있다는 평도 받고 있다. 금호그룹의 효시는 46년 광주에서 포드 택시 두대로 시작한 운수업이다. 이제 27개 계열사, 종업원만도 2만여명에 달하지만 계열사업장의 80∼90%가 광주·전남지역에 집중돼 있다. 이에따라 금호는 지역이미지 탈피를 위해 요즘 사원채용 승진 등에서 철저히 지역을 안배하고 있다. 지역편중은 오너의 금기 1호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전체 임원중 80∼90%가 호남출신이었으나 이같은 노력이 가속화되면서 지금은 비호남 출신과 5대 5수준의 균형을 갖췄다는게 그룹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아직도 괜히 모난 행동을 해 정을 맞지는 않겠다는 보수성이 은연중에 풍겨난다. 금호에는 특정한 경영이념이나 사훈이 없다. 그룹사가도 지난 4월 7일 창립 50주년과 그룹회장 이취임을 기념해 만들었을 정도다. 여타 그룹들이 그룹이미지 광고에 막대한 물량을 쏟아 부을때도 금호는 대외적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는데 매우 인색하다. 대신 금호는 얼굴내밀기 보다는 내실추구쪽으로 방향을 잡아왔다. 국내최초로 그룹사옥 전체를 금연빌딩으로 선포했는가 하면 출근시간을 1시간 앞당겨 8시부터 1시간동안 아침 자율학습을 실시하고 있다. 자율학습시간에는 모든 업무를 하지 못하며 외출도 허락되지 않는다. 중구 회현동 그룹사옥을 들어서면 국내 어느기업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사옥도서관을 발견할 수 있다. 공부하는 그룹분위기를 만든다는 취지아래 만들어진 50여평 규모의 이 도서관에는 2만5천여권의 장서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하루평균 1백50권 정도가 대출된다. 최근에는 CD 3천여장을 구비한 CD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에 개설된 금호MBA 과정에는 매년 2백20여명이 등록, 경영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금호맨들이 스스로를 「금호고등학교」에 다닌다고 말할 정도다. 고등학생이 성인이 되면 가치관이 변하고 성격도 변한다. 금호는 해방 이듬해인 46년 창업돼 경제·정치적혼란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견디고 올해 50주년을 맞았다. 운송업에서 시작한 사업은 현재 타이어, 건설, 석유화학에 이어 하늘(아시아나항공)로 세를 넓혔다. 지난 4월 6일에는 창업 50주년을 맞아 『2000년대에는 국내 10대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꿈을 담은 21세기비전도 선포했다. 회장 이취임과 함께 열린 이행사에서 박회장은 『금호는 단순히 영리만을 추구하는 기업활동이 아니라 깨끗하고 정직한 경영자세로 항상 창조적인 위치를 창출해 왔다』고 강조하고 『앞으로 정보통신, 생명과학, 우주항공 분야에 적극 진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국내 기업환경을 감안할때 신규사업진출과정에는 정도를 벗어난 유혹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중의 상식. 도덕교과서대로 살아온 금호가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50세)을 넘어 재도약을 꾀하는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더욱 치열해질 경쟁에서도 여전히 도덕문화를 유지할 것인지도 관심있게 지켜볼 내용이다.<정승량> ◎금호의 상징­금연빌딩/90년부터 그룹사옥내 전면금연/WHO서 박회장에 감사패 수여/아시아나항공 등 전사업장 확산/인간중심 경영이념 본보기 금호그룹 회장 부속실에 근무하는 박찬씨(30)는 대학시절부터 담배를 즐겼다. 지금도 피우지만 하루 5개피 내외다. 입사 당시에는 사무실은 물론 화장실내에서도 금연이라는 회사지침이 황당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취지를 이해하면서부터 오히려 금연애찬론자로 변했다. 금호의 그룹사옥은 국내 최초의 금연빌딩이다. 지난 90년부터 사옥내에서는 「절대금연」이다. 금연운동의 선봉에는 박성용 명예회장이 서 있다. 박명예회장은 금연에 관한한 독재자다. 그는 『우리가 가진 가장 값진 자산은 인간 그 자체이며, 그 자산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건강이다』며 전사적인 금연운동을 선포했고, 이의 추진에 나섰다. 86년부터 스스로 담배를 완전히 끊고 단계적인 홍보에 들어가 90년 본사사옥을 「금연빌딩」으로 선포했다. 흡연실도 따로 없고 화장실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당시 박명예회장의 말이 걸작이다. 『담배를 피우고 안피우는 것은 개인문제지만 흡연사원을 승진 안시킬 권리는 나에게 있다.』 금호의 금연운동은 세계적인 뉴스가 됐다. 91년 박명예회장은 금연빌딩과 관련해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금호는 91년부터 그룹 전사업장에 대해서도 「완전금연」에 들어갔다. 아시아나항공의 전노선까지 금연지역에 포함됐다. 비행시간이 6시간 이상 걸리는 노선에 금연을 선포하기는 금호가 처음이다. 아시아나의 한 관계자는 『초기에는 지정금연석 운영, 금연스티커 부착과 금연권등의 홍보를 통해 승객들의 금연을 유도했다. 승객들도 쾌적하고 청결한 기내분위기를 원해 금연을 선포했다. 대신 서비스 강화를 통해 혹시 있을지 모를 승객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호의 금연운동은 현재 각 기업, 학교, 사회단체로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일정규모 이상 공공건물에는 반드시 별도로 흡연지역을 설정토록 지시한 것도 금호의 금연운동이 거둔 성과라는 지적이다. 금호의 금연운동. 여기에는 인간중심의 사고가 짙게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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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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