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검찰, 기본으로 돌아가라


대선자금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 2003년 12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여야 당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느닷없는 폭탄선언을 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 캠프에서 쓴 불법 대선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1만 넘으면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는 노 캠프의 불법자금 규모를 한나라당의 10분의1 이하로 맞추라는 가이드라인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최고 권력에서 나온 발언인 만큼 압박감을 느꼈을 법도 하지만 안대희 중수부장을 중심으로 하는 대선자금 수사팀은 노 대통령의 발언에 그다지 흔들리지 않았다. 수사 방향을 놓고 수사팀 간에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3개월 뒤인 2004년 3월 초 수사팀은 노무현 캠프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가 119억원에 달한다는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한나라당의 불법자금 규모가 823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노 캠프의 자금이 8분의1을 넘은 것이다.


당시 기자들은 "10분의1을 넘긴 것 아니냐"고 질문을 했지만 안대희 부장은 "수사가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문제가 된 정치인들의 개별 불법자금만 밝힐 뿐이지 양 당의 전체 자금을 별도로 집계하지 않았다"며 예봉을 피해갔다. 결국 노 캠프의 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1을 넘었는지 안 넘었는지는 기자들이 알아서 쓰라는 의미였다. 이에 각 언론들은 노 캠프의 불법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1을 넘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잇단 내분으로 사회질서 혼란 야기


2003년 대선자금 수사는 검찰 역사상 가장 잘 된 수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수사와 관련된 대통령이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수사팀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뚜벅뚜벅 자신들이 갈 길만 갔다. 그렇다고 수사에 압력을 행사한다며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식의 촌스런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대선자금 수사는 당시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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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검찰의 모습은 그때와는 너무 다르다. 정부는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고 그 기능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관했지만 정치색이 짙은 사건의 처리를 놓고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대선 때 국가정보원의 댓글 의혹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지휘부와 수사팀 간의 내분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국정원 직원 체포 때 제대로 보고를 했는지 상부의 부당한 지시가 있었는지를 놓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현재 대검 차원에서 감찰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누가 법을 위반했는지는 조만간 드러날 것이다.

문제는 요즘 검찰이 모래알 조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수사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검사는 상급자의 지휘ㆍ감독에 따른다'는 검찰청법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개인적 이해 떠나 공익 대변자 돼야

이 시점에서 검찰은 과거를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03년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도 각 수사 검사들은 나름대로의 정치적인 색깔이 있었을 것이다. 수사팀이 이후 검찰을 떠난 뒤 정계에 입문할 때 선택한 정당이 다르다는 것만 봐도 서로의 정치적인 견해는 달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2003년 대선자금 수사팀은 수사 방향을 놓고 의견이 갈려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개인의 정치적인 입장을 국가 권력행사에 개입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검찰 내분으로 법 집행방향이 담당 검사에 따라 달라지면 사회 질서는 유지될 수 없다. 이에 따른 피해를 줄이려면 이제라도 검찰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검사 개인의 이해관계를 떠나 공익의 대변자로서 오로지 국민을 섬기고 진실에 따라 공평하게 일을 처리한다면 최근과 같은 검찰 혼란은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검사들은 임관 초기에 했던 검사 선서를 곰곰이 되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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