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삽 대신 인공위성으로 고대유적 발굴

우주로 간 '新인디아나존스'<br> 지상에 전파 쏜 후 첨단영상분석기술로 고대 문명지 밝혀<br>NASA '우주고고학' 참여…몇년걸리던 일 30분만에 뚝딱

지구관측위성을 활용하는 우주고고학자들은 사막의 모래바람이나 밀림의 독충들과 싸우지 않고도 사무실에 편히 앉아 고대 유적 탐사작업을 할 수 있다.

페루 우루밤바 계곡의 해발 2,280m 정상에 위치한 잉카제국의 공중도시 마추픽추.

영국 캠브리지대학 출신의 롤랜드 플레처 박사는 인공위성과 SAR 영상을 통해 앙코르가 미국 LA 면적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 도시였음을 밝혀냈다.

고고학자라고 하면 황량한 사막이나 밀림 속에서 베일에 감춰진 고대유적을 찾는 사람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대의 고고학자들은 더 이상 사막과 밀림을 헤매지 않는다. 지상 700㎞ 상공의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고해상도 영상을 활용, 사무실에 앉아 유적을 탐사한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4~5년이 걸리던 탐사작업을 단 30분 만에 끝마칠 수 있다. 게다가 육안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흔적들까지 정확히 발견할 수 있다. 이른바 ‘우주고고학’이라고 불리는 이 새로운 학문에 의해 지금 고대문명의 역사가 다시 써지고 있다. 신세대 고고학자 인디아나존스ㆍ미이라ㆍ쥬라기공원 등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직업은 고고학자다. 이들은 밀림과 사막, 황량한 벌판에서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고대유적과 공룡의 화석을 찾아헤맨다. 이처럼 고고학자들은 그동안 땅바닥에 주저앉아 수개월간 흙더미를 파헤치거나 큰 칼을 휘두르며 열대우림을 헤치고 다녀야만 했다. 하지만 신세대 고고학자들은 이제 더 이상 고대유적을 찾기 위해 흙먼지나 독충들과 싸우지 않는다. 쾌적한 사무실에 앉아 유적을 탐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세대(?) 고고학자들이 4~5년간 현장을 샅샅이 뒤져야만 알 수 있었던 탐사정보를 단 30분 만에 얻어낸다. 정확도 또한 기존 방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으며 깊은 땅속이나 심해, 길 없는 정글 등 탐사지역의 제한도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 비밀은 첨단 과학기술에 있다. 사실 이들에게는 인공위성이 지도이자 곡괭이다. 최신 영상장치를 장착한 인공위성이 찍은 고해상도 이미지를 고성능 디지털센서와 첨단 이미징 소프트웨어로 분석, 육안으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유적들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땅이 아닌 지상 700㎞ 상공의 우주공간에서 고대유적을 발굴하는 셈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수년 전부터 고고학계의 화두로 급부상한 이 학문을 ‘우주고고학(Space Archaeology)’이라고 명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고고학계를 뒤흔든 위성 현재 인공위성으로 무장한 신세대 고고학자들에 의해 고고학의 역사가 다시 써지고 있다. 수개월마다 예기치 못했던 장소에서 가치 있는 유적들이 새로 발굴되거나 지난 수십년간 베일에 싸였던 고고학적 의문에 해답을 제시하는 탐사 성과들이 잇따르면서 기존 고고학 이론들을 뒤흔들고 있는 것. 미국 앨라배마대학의 고고학자 사라 파켁 박사는 얼마 전 이집트의 한 폐허 아래 묻혀 있던 기원전 600년의 고대도시 텔 테빌라의 성벽을 발견했다. 고대 이집트 집터에 인과 유기물 성분이 많다는 점에 착안, 15가지의 빛 파장으로 지표면을 촬영하는 NASA의 다중분광위성 테라와 디지털글로브사의 상업위성 퀵버드의 가시광선 영상을 결합해 이 같은 지역만을 선별해 발굴한 결과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연구팀도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칠레 이스터섬에서 폴리네시아인들이 모아이 인면석상을 옮길 때 사용했던 길을 찾아냈다. 이 길이 확인되기 전까지 석상의 이동방식은 고고학계의 오랜 불가사의였다. 하버드대학의 제이슨 우 박사는 아시리아 왕국의 관개수로망을 위성영상으로 분석,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부도심들을 발견했다. 또한 보스턴대학의 빌 새터노 박사는 과테말라에서 수백 채의 건물이 밀집한 대규모 마야 유적지를 발굴해냈다. 이 모두는 과거 육체노동 방식(?)의 발굴에 의존했을 경우 영원히 역사 속에 묻혀버렸을지 모를 귀중한 문화유산들이다. ■ 고고학에 뛰어든 NASA 물론 파켁 박사 등이 사용한 위성영상분석법이 모든 우주고고학에서 일관되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집트 삼각지에서 통했다고 사하라 사막에서도 통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다중분광위성 영상분석법은 삼각지나 밀림에서는 효과적이지만 나무가 없는 평야나 사막에서는 인공위성이나 항공기에 부착해 사용하는 합성개구레이더(SAR)가 훨씬 좋은 결과를 도출한다. SAR는 지상에 전파를 쏜 뒤 반사파를 수신해 지표면을 2차원 영상으로 재현해주는데 지면의 고도, 토양의 습도, 지질, 식생분포 등의 정보를 세세히 알 수 있어 고대 수로나 유적 발견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받을 수 있다. 즉 우주고고학자들은 각 탐사지역의 특성에 맞춰 최적의 영상촬영기술을 찾아내야 하고 필요에 따라 이를 개량하기도 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기술을 사용하든 모든 우주고고학자들에게는 공통분모가 하나 있다. 바로 세계 최다 지구관측위성을 보유한 NASA와 밀월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우주항공기술의 민간산업 적용에 적극적인 NASA 또한 초정밀 SAR를 제작, 유적 탐사를 통해 성능을 확인하는 등 위성의 고고학적 활용 증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NASA가 우주고고학 부서를 발족시킨 것이나 전세계에서 진행 중인 7개 우주고고학 프로젝트에 200만달러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렇듯 우주고고학의 출현으로 고고학계의 판도가 다시 짜여지고 있지만 모든 고고학자들이 이를 추종하지는 않는다. 아직도 대다수 연구자들은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 부정할 수 없는 힘 국제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의 요청으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의 복원작업을 수행했던 프랑스 극동학원(EFEO) 소속 그리스토프 포티에 박사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위성영상은 항공사진보다 조금 낳을 뿐이며 SAR 등의 레이더 역시 발로 뛰는 것 이상의 정보를 얻어내기는 어렵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그는 크메르루주 게릴라와 지뢰밭의 위험을 무릅쓰고 지난 6년간 현장을 발로 뛰며 앙코르 중부와 남부 600㎢ 지역의 유적 지도를 완성해냈다. 하지만 그 또한 캠브리지대학 출신의 롤랜드 플레처 박사를 만나면서 기술의 힘을 끝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앙코르에는 가본 적도 없었던 그가 자신과 거의 동일한 유적 지도를 갖고 있었던 것. 이는 지난 1994년 우주왕복선 엔데버호가 찍은 해상도 30m의 사진 1장으로 30분 만에 알아낸 것이다. 현재 플레처 박사는 시드니대학의 고고학자 데미안 에번스와 함께 인도차이나를 지배했던 앙코르 제국의 비밀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미 위성 및 SAR 영상과 항공사진을 활용해 사원 터, 해자(垓子), 도로, 수로 등 수천개소의 신규 유적을 찾아냈다. 또한 포티에 박사가 지뢰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북부 앙코르 지역 1,500㎢의 유적 지도까지 완성한 상태다. 플레처 박사는 “앙코르와트가 아닌 앙코르 전역에 대한 분석을 실시, 앙코르가 한때 미국 LA 면적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 도시였음이 밝혀졌다”며 “지난 100여년간의 학설과 달리 앙코르는 과도한 난개발과 자연 파괴로 멸망에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플레처 박사 연구팀은 앞으로 항공기용 SAR보다 해상도가 4배나 뛰어나고 전파 대역도 길어 삼림의 나뭇잎까지 관통하는 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최첨단 제트기용 SAR를 활용, 이 같은 이론을 입증해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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