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되돌아본 98경제] IMF 1년.. `회생의 빛' 보인다

1997년 12월 3일. 우리 역사에 또하나의 국치일로 기록된 날이다.임창렬 당시 경제부총리와 이경식 한국은행총재는 이날밤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총재가 지켜보는 가운데 IMF 구제금융을 위한 정책이행각서에 서명했다. 이른바 IMF체제의 시작이었다. IMF체제는 국민생활 전반에 걸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대마불사의 신화가 무너지면서 은행, 대기업 등이 줄줄이 문을 닫거나 통폐합됐고 100만명 이상의 실업자 무리가 거리로 쏟아졌다. 가계는 가계대로 갑자기 얇아진 월급봉투에 맞춰 살기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만 했다. 선진국 사교클럽인 OECD에 가입, 한때 어깨를 으쓱거렸던 자부심은 간데 없이 사라졌고 감당키 어려운 고통이 이어졌다. 그로부터 꼭 1년이 흘렀다. 외견상 한국은 여전히 IMF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국민들의 생활여건 역시 연초보다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난 1년간의 고통이 그냥 고통으로만 끝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나 우리 경제는 희미하나마 조금씩 회생의 빛을 찾아가고 있다. IMF체제 1년을 보낸 지금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한 나라로 국제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같은 성과는 고통과 마주 선 국민들에게 새 희망의 메시지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경제 회생의 조짐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섣부른 경기회복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될 정도로 각종 경제지표들이 급속히 호전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환란의 직접적 원인이었던 외환보유고가 IMF이전 수준보다 훨씬 늘어났다. 지난해 12월중순 한때 39억4,000만달러를 기록, 사실상 국가부도 상태까지 몰렸던 가용외환보유고는 올들어 지난 15일 현재 487억달러로 늘었다. 외환사정이 호전됨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IMF로부터 빌렸던 지원금 가운데 올 연말 만기가 도래하는 SRF(긴급보완금융)자금 28억달러를 조기 상환키로 결정하는 등 외화운영에 여유를 보이고 있다. 자금상환 결정은 IMF지원을 받은지 불과 1년만에 우리나라가 IMF 졸업절차를 밟기 시작했다는 의미와 함께 국제적으로 한국의 대외신인도 회복을 과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금융여건도 급속히 호전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연 30%선을 오르내리던 시중실세금리가 1년만에 사상최저 수준인 7%대로 떨어졌고 주가도 급격한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인 시장실세금리인 3년만기 회사채유통수익율은 최근 연일 최저치를 경신하며 7.6%대에 진입했다. 회사채 수익율이 7%대를 기록한 것은 사상 처음으로 지난해말 연 29%대와 비교하면 무려 4분의 1수준으로 급락한 것이다. 3년만기 국고채 수익율도 연 6%대까지 떨어졌으며 금융기관간 초단기거래인 콜금리는 이미 6%선에서 자리를 잡은 상태. 시중금리가 외환위기 이전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짐에 따라 기업들의 금융비용 부담이 줄어들고 부도가 감소하는 등 긍정적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환율도 안정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연말 1,400원에 이어 올초 한때 1,900원대까지 뛰어올랐던 환율은 요즘 1,200원에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급격한 환율등락은 사라진 지 오래고, 수출여건 회복을 위해 오히려 정부가 나서 환율을 적정수준까지 끌어 올려야 한다는 주장마저 제기되고 있다. 금융 및 외환사정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IMF 탈출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사가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고 나선 것이다. 무디스는 지난 19일 한국의 신용전망 상태를 종전 「안정적」에서 「긍정적 신용관찰」수준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긍정적 신용관찰은 앞으로 3개월 이내에 무디스가 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을 위한 전문 실사작업에 착수,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날 경우 곧바로 등급을 조정하겠다는 뜻이다. 무디스의 이번 조치로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은 향후 수개월 내 상향조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우리나라의 현행 신용등급이 투자부적격 단계에서 가장 높은 BA1인만큼 실사결과 등급이 한단계만 높아져도 우리나라는 곧바로 투자적격 단계로 올라설 것이 확실시된다. 국가신용도가 정크본드에서 벗어나 투자가능 수준으로 회복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빠른 경제회복 속도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IMF를 온전히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더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데 섣부른 경제회복론이 유포되면서 분위기가 이완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우리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선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하지만 OECD 가입때처럼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선 안된다』고 경고했다. 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듯 IMF를 벗어나는 과정도 결코 간단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경제가 회복조짐을 보이는 것은 분명하나 섣부른 낙관론에 도취해 일을 그르쳐서는 안된다는 신중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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