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유럽이 버린 유럽식 모델

김대식 <중앙대학교 부총장>

언제 독일이 유럽의 경제 환자가 되었던가.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켰던 독일은 전통적으로 경제력이 강한 나라인데 이제는 유럽에서 가장 허약한 나라가 됐다. 독일의 병은 통일이 되면서 시작됐다는 주장이 있다. 통일이 독일을 이탈리아와 같은 형태로 전환시켰다는 것이다. 즉 이탈리아는 생산성이 높고 번영하는 북부와 뒤떨어진 남부로 갈라져 있다. 독일도 마찬가지로 생산성이 높은 서독 지역과 의존적인 동독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두 나라의 국가 예산은 모두 낙후된 지역에 쏟아붓는 재정지원으로 큰 부담을 안고 있다. 또 다른 주장은 독일의 병은 지나친 규제와 관대한 복지, 강력한 노동조합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에 원인이 있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일자리 창출을 막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20여년 전에 독일의 경제학자 헤르베르트 기르쉬(Herbert Giersch)는 ‘유럽 경화증’이라고 불렀다. ‘현재 EU의 소득, 고용, 생산성, 연구개발 투자는 미국의 지난 90년대 말~80년대 초 수준으로 20여년 뒤졌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유럽을 이끌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은 저성장에, 10%대의 높은 실업률과 막대한 재정적자로 유럽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프랑스가 주35시간 근로제를 7년 만에 사실상 철회했다. 노사합의를 거쳐 주당 근로시간을 13시간 늘려 48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했다. 독일에서도 지난해 폴크스바겐ㆍ다임러크라이슬러ㆍ지멘스 등 세계적 기업들이 근로자의 일자리를 보장해주고 대신 임금을 동결하고 노동시간을 늘리는 데 합의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업들이 공장을 해외로 옮기고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적게 일하고 많이 받는’ 유럽식 복지 모델이 퇴조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의 국경이 사라진 글로벌 경쟁시대에서 유럽도 미국식의 성장주도형 경제정책을 채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때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는 유럽의 금융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적막함이 깃들고 있다. 강력한 노동투쟁의 몫은 결국 일자리 감소라는 대가로 근로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유럽이 유럽식 모델을 버리고 있는데 세계에서 한국만이 유일하게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등 유럽식을 배우겠다고 기웃거리고 있는 것은 참으로 우리의 미래에 희극적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언제까지 낡은 이념의 포로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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