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영악하면서도 인간적인 조선시대 여성예술가 그려


■붉은 비단보 권지예 지음, 이룸 펴냄 ‘뱀장어 스튜’와 ‘꽃게 무덤’으로 이상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권지예씨가 신작 ‘붉은 비단보’로 팬들 곁에 돌아왔다. 아름다운 문체로 폭 넓은 독자층에 사랑 받아온 그가 이번에는 조선시대 아녀자들의 사랑과 예술혼을 소재로 택했다. 전작들이 대부분 모던하다 못해 포스트 모던하다는 평가를 얻었던 터라 이번 작품에서는 어떤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도 “나로서는 이번 소설의 의미가 깊다. 옛 여인들을 소재로 소설을 써본 낯선 모험을 했다”고 말했다. 조선시대라는 봉건적 체제속에 태어났지만 예술적 끼와 자유로운 영혼을 타고난 3명의 여인이 각자 엇갈린 인생을 산다는 게 주된 줄거리. 주인공 ‘항아’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는 ‘초롱’과 ‘가연’은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고, 시를 쓰며 재능을 키워나간다. 하지만 조선조 사대부가의 여식들이 제 뜻대로만 살 수는 없는 법. 총명하고 지혜로워 문필 신동이라 불리는 가연은 열 다섯 나이에 서울로 시집간다. 항아도 부모님 몰래 백년가약을 맺은 정인(情人)인 ‘준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결혼한다. 초롱은 정이품 좌참찬 벼슬을 하는 정운교 대감의 서녀(庶女)인데 집안이 역모로 몰리는 바람에 노비로 팔려간다. 이들의 운명은 공지영 작가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 나오는 3명의 여자 동창생처럼 엇갈린다. 여기까지 보면 ‘붉은 비단보’의 주인공들은 그간 소설과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했던 전형적인 인물로 비춰진다. 하지만 권 작가는 폭풍과 같은 열정과 광기, 그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사는 여성 예술가라는 ‘클리셰’(clicheㆍ진부한 생각)를 거부한다. 그는 “화려한 삶이나 비극적인 삶으로 예술가적 아우라를 담보하는 것이 아닌 반(反) 클리셰적인 예술가를 그리고 싶었다”며 “지독히 현실적이면서도 성찰적이고 분열적이고도 타협적인, 영악하면서도 인간적인 그런 예술가를 그리려 했다”고 말한다. 작가가 꼽은 ‘그런 예술가’는 바로 항아. 항아야 말로 평범한 아녀자의 길을 걸었지만, 현실적이고 성찰적이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 차용된 조선 시대의 한시와 고대 중국 여인들이 쓴 시들이 작품의 매력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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