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사학법인과 김밥할머니

연말연시가 되면 으레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미담 기사 중 하나가 ‘김밥 할머니’에 관한 사연이다. 나이든 할머니가 평생을 김밥이나 어묵 장사를 해 모은 몇억, 또는 몇십억의 전 재산을 ‘못 배운 한(恨)을 풀기 위해’ 어느 사학재단에 턱하니 내놓았다는 것이다. 이를 만류했을 가족들을 생각하면, 또 그보다 더 좋은 용처(用處)가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그 할머니의 숭고한 뜻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그 할머니가 기탁한 재산이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혹은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았는지 등의 내용은 접하기가 어렵다. 언론들이 이를 등한시한 탓도 있지만 사학들도 이를 그리 중요시하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최근 개정 사립학교법을 둘러싸고 정부와 사학법인들간에 건학이념에 대한 간섭이니 사유재산 침해니 하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사학법 개정은 사학의 건학이념에 국가가 관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개방형 이사제’ 도입으로 사학재단 이사회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사학법인들은 개방형 이사의 진출이 그동안 ‘사유화’하다시피 해온 사학재산과 운영에 큰 제약요소로 작용하게 될까 전전긍긍하는 듯하다. 개정 사학법의 이사회 운영에서 실제 문제가 되는 사학들은 현재도 종단의 견제를 받고 있는 종교계 사학이 아니라 전체의 75%를 차지하는 개인 사학들이다. 이들은 아직도 별다른 투명성 장치 없이 학교 운영비의 90% 이상을 학생 등록금과 정부 예산에 의존하면서 전근대적인 ‘가족경영’을 일삼고 있다. 이들은 1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온 여러 종교계 사학들의 뒤에 숨어 그동안 비리의 원산지가 돼온 자신들의 치부를 애써 감추려 한다. 이들 사학들은 이제 외환위기(IMF) 이후 우리 대기업들이 ‘사외이사제’를 도입함으로써 회사가 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제적인 신뢰도가 높아져 창업 이후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음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번 개정 사학법의 성공적인 정착으로 사학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더욱 높아져 사학법인에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는 ‘김밥 할머니’들이 앞으로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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