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예절교육, 기초부터 다지자

약 10년 전 미국 여행 중 택시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다 한국 사람들은 거칠고 무례하다는 말을 들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릴 하느냐고 따지자 자기가 겪은 몇 가지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자기 아파트에 사는 한국 아저씨는 몇 달째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항상 무표정한 얼굴로 인사 한번 안하더라, 한국 사람들은 기차에서 창가 쪽에 자리가 비면 그냥 밀고 들어와 앉더라는 등 우리네 삶에서는 별로 흉될 것도 없는 내용들이었다. 공공장소 '몰염치한 행동' 많아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면 낯선 사람에게도 “하이”하며 말을 걸고, 버스에서 창가 쪽 자리에 앉고자 하면 반드시 “실례합니다”라고 말한 후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나 길을 열어주면 비로소 들어가 앉는 그들의 문화를 생각하면 그렇게 느낄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라고 말해줬지만 내심으로는 그런 사소한 에티켓만 잘 지킬 뿐 실제로는 별 것도 아닌 일로 걸핏하면 소송까지 가는 당신들보다는 그래도 이웃간에 웬만한 일은 좀 거슬려도 덮어주며 살아가는 우리가 훨씬 정겹고 인간스럽지 않느냐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사실 우리처럼 이웃간에 따스한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지구상에 흔치 않다. 질그릇처럼 투박하지만 훈훈한 인정이 넘치는 우리네 삶이 외국인의 눈에는 거칠고 무례하게 보이는 것은, 우리의 경우 아는 사람에 대한 행동기준과 낯선 사람에 대한 행동기준에 차이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실제로 우리가 훈훈한 정을 나누고 사는 이웃이란 지연ㆍ학연 등으로 나와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일 뿐이며 모르는 사람은 철저한 무관심의 대상이다. 일상 속에서 흔히 발생하는 공공장소에서의 몰염치한 행동들도 따지고 보면 낯선 사람들에 대한 무배려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자기가 잘 아는 사람에게 보다 따스하고 사려 깊은 배려를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낯선 사람에 대한 배려는 본능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형성되는 후천적인 인성일 뿐이기에 오히려 에티켓이라는 행동 규범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돼온 것이며, 이런 에티켓은 어려서부터 교육을 통해 몸에 배야만 비로소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우러나온다. 그런데 선진국들은 유치원부터 이러한 에티켓 교육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반면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는 차이가 한국 사람은 거칠고 무례하다는 지적으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일 뿐이다. 이런 문제들은 삶의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며 똑같이 예의 없고 투박한 행동이라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행동하느냐에 따라 눈에 거슬리는 정도는 분명 차이가 있다. 소박하지만 인정 넘치는 시골 아낙의 투박한 행동거지는 때로는 은근한 매력마저 느끼게 하지만 소위 배운 사람들의 무례한 행동은 보는 이의 마음을 꽤나 불편하게 한다.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우리의 예절은 나날이 세련돼가야 할 텐데 유감스럽게도 이 점에서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듯하다. 특히 요즘에는 배운 사람들의 몰염치한 행동이 오히려 더 많이 눈에 띄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어려서부터 타인 배려 배워야 얼마 전에는 식당에서 우리 옆 자리의 단체 손님들 때문에 서둘러 나와버린 적이 있다. 20~30대의 화이트컬러 직장인들로 짐작되는 사람들이었는데 오기 전에 볼링시합이라도 했는지 한사람씩 호명해가며 점수가 발표될 때마다 20여명이 동시에 식당이 떠나갈 정도로 “와”하며 박수를 쳐대는 것이었다.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도모하고 있는 오늘날 배울 만큼 배운 신세대의 모습이 이렇다면 이건 심각한 문제이다. 만일 10여년 전 나를 불쾌하게 한 외국인을 오늘 다시 만난다면 도저히 이제는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라고 우길 수 없을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더 늦기 전에 정말 기초부터 다시 다져야 할 것 같다. /이미현 <변호사·법무법인 광장·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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