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너무 다른 英·日왕실

다이애나 왕세자비 사망 이후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영국 왕실이 다시금 전 세계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시작은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의 세기의 결혼식이었다. '해가 지지않는 나라'로 불렸던 영국은 유럽에서도 독일과 프랑스에 밀리는 신세로 전락했지만 '왕실'이라는 소프트 파워를 세계에 선보이며 다시 한번 건재함을 과시했다. 세기의 결혼식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 이번에는 왕실의 최고 어른이 나섰다. 17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할아버지 조지 5세가 아일랜드를 방문한 지 딱 100년만에 아일랜드 땅을 밟았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종교 문제를 두고 수백 년 동안 으르렁댔던 앙숙 관계였다. 아일랜드는 독립전쟁을 일으켜 1921년 영국의 통치에서 벗어났지만 북아일랜드를 두고 양국은 최근까지 피를 흘렸다. 영국에 대한 아일랜드인들의 원한과 분노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런 점에서 여왕의 아일랜드 방문은 세계의 시선을 붙들기에 충분했다. 여왕은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푸른색 옷을 입고 아일랜드 독립 투사들의 혼이 서려있는 아일랜드 추모공원을 찾아 헌화와 묵념을 했다. 이어 영국이 아일랜드에 고통과 손실을 준 점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역사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영국 왕실과 달리 일본 왕실은 너무도 조용하다. 물론 기회는 있었다. 지난해 한국 역사학자들은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일왕이 방한해 식민지 지배를 공식 사과하고 한일 과거사에 종지부를 찍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일본 왕실은 영국 왕실과 달리 정치적 영향력이 적지만 한일 과거 청산을 위해서 일왕의 사과는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일본 왕실은 모처럼 찾아온 100주년이라는 호기를 날려버렸다. 일본은 사과는커녕 연례 행사처럼 독도 영유권 문제와 역사 교과서 문제를 들고 나와 한국을 들쑤시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00주년'을 십분 활용해 아일랜드를 방문하며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비록 100이란 상징성이 사라진 101년이 됐지만 아키히토 일왕이 지금이라도 독립기념관을 찾아 진심 어린 사죄를 하는 모습을 그려본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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