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전자산업 40년] 2010년 어느 바이어의 '메이드 인 코리아'

서울발 로스엔젤레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샤우드 로빈슨(남·37)은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퍼스트클래스 편안한 좌석에 몸을 한껏 집어넣은 채 따뜻한 홍차를 한 잔 달게 마시고 있다.전날 밤 한국의 A사가 야심작으로 개발한 「차세대 대화형 벽걸이 TV」 구매계약을 미국의 가전제품 신흥 양판점 체인 K-서클이 어렵게 성사시킨 것이다. 『내일 아침 신문·방송 등을 통해 A사가 개발한 차세대 TV를 K-서클이 6개월간 독점구매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경쟁사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리고는 악몽같은 지나간 2년을 더듬어보았다. K-서클의 구매담당 총 책임자인 로빈슨은 2003년 K-서클 창업 멤버로 가세한 이후 줄곳 핸즈 회장의 오른팔 노릇을 하며 승승장구해왔다. 적어도 K-서클「창업 5주년」을 맞은 2008년 새로운 영업정책을 결정하는 임원 총회 때까지. 그날 로빈슨은 『K-서클이 한국산 벽걸이 TV를 취급해야 한다』는 임원들의 전체 의견을 묵살했다. 한국산 냉장고, 전자레인지, 에어콘 등 가전제품이 너무 고가(高價)이므로 K-서클 고객과는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K-서클의 경쟁기업인 월마트는 K-서클의 저가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의 주요 가전업체 대부분으로부터 1년 공급 계약을 일괄 체결하는 초대형 승부수를 띠웠다.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K-서클의 가격공세를 품질로 극복해보겠다는 것. 결과는 월마트의 고품질 전략을 진두지휘했던 스톤 풋의 압도적인 승리로 나타났다. 2008년 겨울 LA인근을 강타했던 강도 6.2의 지진과 수천여 차례의 여진 속에서도 「전파 교란 자동 제어기술」이 적용된 한국산 TV와 인공위성을 통해 소소한 사고지역마저 인식해 내는 「자동항법장치」를 채택한 한국산 자동차의 성능이 확인되면서 「메이드 인 코리아」가 단숨에 최고의 명품으로 대접받기 시작한 것. 주말단위로 경쟁업체들의 판매실적이 발표되면 입꼬리가 말리면서 오른쪽 눈썹이 올라가곤 하던 핸즈회장의 따가운 눈총은 꿈속에서도 나타날 정도로 로빈슨에게 스트레스를 줬다. 그러나 로빈슨은 1년 전 미국을 찾은 대학동창생 미스터 한(韓)으로부터 A사가 차세대 개념의 TV개발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는 정보를 접하면서 역전의 계기가 왔다고 생각했다. A사의 차세대 대화형 벽걸이 TV는 형광체 유기화합물을 통해 화상을 표시하는 신개념의 디스플레이를 적용했으며 금속성 도료로 표면처리를 해 반영구적인 수명을 자랑하한다. 또 소비자가 원하는 크기대로 주문제작이 가능해 벽 전체를 화면으로 꽉 채울 수도 있는 제품. 로빈슨이 처음 접촉을 시도했던 1년전만해도 A사는 K-서클의 저가 이미지를 꺼려했다. 하지만 이번 계약이 이뤄지면 K-서클은 고급 유통체인을 별도로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 드디어 6개월간의 잠정적인 독점 수입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태평양 상공에서 로빈슨은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파는 것은 품질뿐 아니라 서비스도 포함돼 있다』는 A사 김한국회장의 말을 다시 한번 음미했다. 김형기기자K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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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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