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박흥진의 할리우드 통신] 스크린에서도 규제 받는 흡연

美 영화협회 "등급 판정때 고려"<br>타당성 판단 기준 모호해 논란



끽연자들이 마치 나환자들처럼 사회에서 격리(?)된 요즘 흡연이 스크린에서 마저 규제를 받게 됐다. 영화에 관람등급을 매기는 미 영화협회(MPAA)는 최근 앞으로 흡연이 등급 판정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MPAA는 영화 속 흡연의 역사적 또는 내용의 타당성과 함께 흡연의 미화화 및 만연 정도 등이 등급판정에 고려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MPAA의 이같은 발표는 영화 속 흡연이 10대들로 하여금 악영향을 미친다는 각종 보고서와 반(反) 끽연단체의 맹렬한 로비 결과로부터 나온 것. 그런데 MPAA의 발표 내용이 애매모호하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면 되고 세 개비는 피우면 안 된다는 것인지 또 내용상 타당성 여부를 가리는 기준은 무엇인지도 분명치가 않다. 어쨌든 이 발표 뒤로 디즈니사는 앞으로 자사 상표 영화에서는 일절 흡연장면을 못 쓰게 했으며 자회사인 터치스톤과 미리맥스의 영화에서는 가급적 흡연장면을 쓰지 말도록 종용할 예정이다. 또 유니버설도 청소년 상대의 영화에서는 흡연장면을 아예 없애거나 아니면 절제해 묘사토록 했다. 영화와 흡연은 오랜 관계를 갖고 있다. 옛날 영화를 보면 남녀 배우들이 거의 담배를 태웠다. 골초 커플로 유명한 것이 험프리 보가트와 로렌 바콜인데 보가트는 결국 흡연으로 인한 암으로 사망했다. 4인조 코미디언 막스 형제의 맏형 그라우초는 시가를 태웠고 제임스 딘은 '이유 없는 반항'에서 저항의 표시로 담배를 피웠으며 오드리 헵번은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긴 담배 물부리를 요염하게 입에 물었다. 또 케리 그랜트와 에이바 마리 세인트도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모두 담배를 태우며 사랑의 언어 전희를 즐겼다. 느와르 영화속 요부들인 에이바 가드너, 베로니카 레이크, 리타 헤이워드 및 바바라 스탠윅 등도 모두 담배 연기를 내뿜었는데 이들은 흡연을 성적 제스처로 이용, 남자들을 유혹했다. 현대에 와선 샤론 스톤이 노팬티 차림으로 양다리를 번갈아가며 꼬아가며 담배를 물고 앞에 앉은 형사들을 희롱했다. 이들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에서의 담배와 흡연은 섹시한 소도구요 육감적인 연기의 대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데이비스와 헵번과 가드너가 담배를 태우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오금 저려오는 성적 매력은 아마도 반감됐을 것이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만약 불쑥 나타난 옛 사랑 때문에 술에 취해 테이블을 치며 통탄하는 보가트(카사블랑카)가 담배를 태우지 않았더라면 과연 그의 아픔의 진통이 그렇게 강렬히 느껴질 수 있었을까. 여자들은 담배를 피워 더욱 자극적이었고 남자들은 담배를 태워 더욱 사내다웠다. 특히 로맨틱한 장면에서의 흡연은 레드 와인의 취기 구실을 하는데 이제 앞으로는 영화에서 두 연인이 맨송맨송하니 앉아 사랑을 하게 됐으니 어쩐지 무드가 잡힐 것 같지 않다. 멋들어지게 흡연하는 모습은 어쩌면 미국 사람들보다 담배를 훨씬 더 많이 태우는 프랑스의 두 멋쟁이 배우 알랭 들롱과 장-폴 벨몬도로부터 더욱 강렬히 느껴졌을 수도 있다. 담배는 중독성이란 점에서 사랑과도 같다. K.D. 랭은 '사랑은 담배와 같아'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그 것이 내 입술에 닿기 전까지만 해도 사랑의 스릴을 몰랐지요. 사랑은 결국 사라지고 후회의 재만 남겨 놓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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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한국일보 미주본사 편집위원ㆍ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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