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외래어 오남용 부추기는 IT업계
이지성기자engine@sed.co.kr
지난 2011년 8월31일 국문학계에 기념비적인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1986년 외래어 표기법이 제정된 지 25년 만에 '짜장면'이 '자장면'과 함께 복수 표준어로 인정받은 것이다. 네티즌들은 "이제서야 짜장면이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며 일제히 환호성을 쏟아냈다.
멀쩡히 쓰이던 짜장면이 비표준어 신세로 전락했던 것은 외래어 표기 규정 1장 4항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다"에 따른 것이다. 비슷한 용례로 뉴스(뉴즈 X), 셰어링(쉐어링 X), 에지(엣지 X) 등도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새로운 단어로 탄생했다.
외국어를 우리말인 외래어로 바꾸는 일은 말처럼 간단치 않은 일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용어가 쏟아지는 정보기술(IT) 업계는 더욱 그렇다. 첨단 기술의 의미와 맥락을 표현하는 데 원어만큼 편리한 것이 없다 보니 IT 업계의 외래어 확산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하지만 무작정 외래어를 남발한 나머지 웃지 못할 상황도 일어난다. NHN의 자회사 캠프모바일은 올해 초 스마트폰 화면 꾸미기 프로그램 '도돌 런처'를 출시했다. 이 회사는 첫 화면을 뜻하는 영어 'launcher'를 '런처'로 썼는데 영어권은 물론 외래어표기법을 봐도 올바른 표현은 '론처'다. 점심을 의미하는 'lunch'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졸지에 엉뚱한 단어로 둔갑한 것이다.
응용 프로그램을 의미하는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은 우리나라에서 국적 불명의 단어인 '어플'로 통한다. 언어의 경제학 측면에서도 '앱'이 훨씬 간결하고 이해도 쉽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플이 표준어처럼 자리잡았다. 이쯤 되면 대표적인 콩글리시로 지적 받았던 '핸드폰'이 미국에서 '셀룰러폰'을 누르고 유행을 탄 것처럼 신조어로 등극할 기세다. 젊은 세대로 넘어가면 외래어 오남용은 더욱 심각하다. 업뎃(업데이트)과 카톡(카카오톡)은 애교 수준이고 맛폰(스마트폰), 만렙(최고 레벨) 등 얼핏 들어서는 무슨 뜻인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용어가 수두룩하다.
외래어 대신 우리말을 쓰면 좋겠지만 요즘 세상에서는 불가피할 때가 많다. 어우름(하이브리드)이나 쌈지무선망(블루투스)처럼 우리말로는 제대로 된 의미를 전달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표적이다. 편리한 서비스와 첨단 기능을 선보이는 것 못지 않게 우리 IT 업계가 올바른 외래어 정착에 동참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