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한미 FTA를 넘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이제 마지막 수순만을 남겨놓고 있다. 핵심 쟁점은 뒤로 넘겨 계속 협의한다는 ‘빌트인(built-in)’ 방식까지 동원하는 것으로 보아 한미 양국은 이달 안에 끝장을 볼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제가 많고 아쉬움이 있더라도 한미 FTA를 마무리짓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한미 두 나라는 지난해 2월 초 미국 워싱턴DC에서 협상을 공식적으로 선언했으니 14개월 만에 타결을 이루게 되는 셈이다. 미국이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전광석화식 협상 속도라고 표현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한미 FTA를 놓고 국론이 찬반으로 찢겨 있는 현실을 놓고 볼 때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 협상팀이 얼마나 신중하고 실속 있는 협상력을 발휘했느냐에 대한 질문이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한미 FTA에 대한 논란이 극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FTA를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반드시 ‘졸속’이라는 표현을 즐겨 쓸 것이다. 범여권의 대권 후보인 김근태 의원의 경우 “한미 FTA를 체결하려면 자기를 밝고 지나야 할 것”이라는 발언까지 내놓는 현실을 지켜보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부는 협상을 밀어붙이고 야당도 아닌 여권 인사들이 먼저 딴죽을 놓고 있는 형국이다. 이래서야 한미 양국 정부가 협상을 마무리한다 해도 한미 FTA의 앞날이 어찌 순탄할 것인가. 일이 이렇게까지 꼬이게 된 데는 정부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이 커 보인다. 속뜻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미국은 자국민에게 한미 FTA를 철저하게 실리적인 입장에서 전달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개방만이 살길이다”는 식으로 다소 추상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이념적 접근으로 일관한 게 큰 차이점이다. 미국은 ‘실속’을 강조했고 우리는 개방이라는 ‘대의’에 중점을 둔 것이다. “개방만이 살길이다”고 누차 강조해온 정부의 입장에서는 한미 FTA를 깨면 스스로 ‘살길을 버리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살길’ ‘죽을 길’식의 어법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나도 변호사 시절 종속이론 책을 섭렵했는데 한국 사회에 맞지 않아 폐기했다”며 “진보도 객관적 사실을 인정하고 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한미 FTA라는 주제가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이념적 화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참여정부가 주장해온 ‘동북아 균형자론’을 보완하기 위해 한미 FTA가 추진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미 FTA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실리적이고 실용적인 입장에서 시작됐어야 했다. 무슨 이슈든 한국에서는 이념적 논란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았다면 정부 스스로 한미 FTA를 정치 영역에서 분리시키는 데 주력했어야 옳았다. 그리고 실리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관둘 수 있다는 여유 있는 자세도 필요했다. 본지가 지난해 초 한미 FTA에 대한 심층분석 시리즈를 30회 연재했을 당시만 해도 반대 진영의 움직임은 그리 활발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한미 FTA를 선전하는 정부의 노력도 그리 신통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부지불식간에 한미 FTA는 친미와 반미라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이념 대립의 무대로 넘어가고 만 것이다. 이래서야 한미 FTA를 통한 국익 극대화를 어떻게 꾀할 것인가. 한미 FTA를 찬성하는 쪽에서도 미국의 완강하고 차원 높은 협상력 때문에 “얻는 게 너무 없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퍼지고 있는 가운데 한미 FTA라는 전대미문의 실험이 시작되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 사회는 아직 ‘개방이냐 수구냐’ ‘친미냐 반미냐’는 식의 이분법에 시달리고 있다. 한미 FTA의 실질적인 대차대조표는 도대체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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