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판사가 쓰는 법이야기] <22>퇴근길 단상-지하철에서

취객 난동불구 제재 안받아… 도덕보다 엄격한 법집행 필요


얼마 전 밤늦게 일을 마치고 지하철로 퇴근하게 됐다. 11시가 지난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았지만 운 좋게 앞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내리는 바람에 앉아서 갈 수 있었다. 한동안 졸고 있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깼는데,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어느 술 먹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해 싸움이 일어났고 급기야는 서로 주먹질을 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그 같은 상황이 한동안 계속되자 주위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옮기거나 내려버렸다. 경찰이 출동해 상황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으나 한참 동안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저 불똥이 자신에게 튀지 않기를 바라고만 있을 뿐이었다. 살면서 위험에 처하거나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게 된다. 지하철에서의 일은 밤늦게까지 술을 먹는 사람들이 많고 취한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공연히 시비를 거는 것조차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흔히 겪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우리 사회에 내재해 있는 수많은 위험요소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서 지켜야 할 기본예절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물리적인 것이든, 또는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한 경우에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그 책임은 빨리 부담할수록 좋을 것이다. 그 같은 점에서 볼 때 지하철에서의 행위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었음에도, 그러한 행위를 한 사람들이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고, 바로 그러한 점에서 우리 사회의 위험요소를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가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음에도 아무도 제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아직도 존재하는…. 엉뚱한 생각이지만 어느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이 생각났다. 어느 죄수가 정도에 넘치는 행위를 하면 몸 속에 내장된 칩이 자동으로 반응해 그 사람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함으로써 그러한 행위를 멈추게 하는 장면. 아마 법 집행의 가장 극단적인 모습이자 비인간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 위험이 산재하고 그러한 위험에 대해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그러한 극단적인 처방이 가장 효과적이고 신속한 방안으로 고려될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고, 우리 사회는 단일민족으로 이루어진 사회로서 기본적으로 도덕에 의해서 유지된다고 배웠던 것 같다. 그러면서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미국 같은 사회에서는 사회의 가치관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엄격한 법에 의해 사회질서가 유지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술 취한 상태에서 길거리를 배회하기만 해도 바로 경찰에 체포돼 간다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는 우리 사회가 단지 도덕에 의하여 유지될 수 있는지에 관해 의문이 든다. 혹시 종전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사회가 다양화되는 과정에서 좋고 나쁜 것 가리지 않고 모두 무너져 버려서 이제는 변화된 상황에 맞게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한 가치관은 도덕이 아닌 피해를 주는 행위 및 피해 결과에 대한 일정한 시스템에 의한 접근방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지, 그리고 그러한 접근방법으로서 대표적인 것은 엄격한 법의 집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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