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이성태 한은총재 내정자에 바란다] <중> 시장의 맏형이 돼라

시장이 예측 가능한 정책을<br>외환당국 역할 갈수록 커져 언행 더 신중히<br>중앙銀에 주어진 미시정책 기능 조정해야<br>고액권 비롯 화폐제도 선진화 등도 과제


지난 2005년 2월18일 한국은행이 국회 재경위 비밀회의에서 ‘외환보유액 운용 효율성을 위해 고수익증권과 고금리 통화비중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힌 사실이 21일 외신을 타면서 ‘한은이 달러를 내다판다’는 식으로 과장되게 보도됐다.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달러화는 즉각 엔화에 대해 4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떨어졌고 원ㆍ달러 환율도 순식간에 17원가량 급락하며 1,000원대를 위협받았다. ‘BOK(한국은행) 쇼크’로 대변되는 이 사건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의 한국의 위상을 확인하는 동시에 외환시장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았다. 외환정책뿐 아니라 금리정책도 시장이 예상하는 방향과는 정반대로 결정되며 불협화음을 내는 경우가 잦았다. 때문에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이성태 한국은행 내정자에게 ‘시장과의 대화’를 최우선 정책 과제에 올려놓을 것을 주문했다. 외국계 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중앙은행이 시장 예상보다 빠르거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시장과 대화를 하자는 것은 시장의 의도대로 중앙은행이 따라와달라는 것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정책을 구사해달라는 요구”라고 설명했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환율 변동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외환당국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점에 오해를 살 수 있는 언행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승 총재가 임기 초에 시장과 불협화음을 냈던 시행착오를 신임 총재가 겪지 않기 위해서는 시장과의 잦은 대화를 통해 정책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한편 시장이 방향을 잡지 못할 때는 중앙은행 총재로서 ‘맏형’ 노릇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거시정책의 양대 수단인 통화정책은 약발을 상실하고 있으며 환율정책도 한계점에 달한 상황이어서 중앙은행이 택할 수 있는 거시정책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정책금리는 올릴 만큼 올렸고 환율도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 아니냐”며 “중앙은행에 주어진 미시정책 기능을 전면적으로 검토해야 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한은 국정감사에서 통화정책 운영 수단 가운데 하나인 중소기업자금지원 목적의 총액한도대출 제도 운영방식을 효율적으로 개선하라는 요구가 재경위원들에게서 빗발쳤지만 아직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또 금융기관 예금의 일정 비율(지준율)을 지급준비금으로 보유하도록 하는 은행의 지불준비금 비율도 96년 3%대로 낮춘 뒤 8년이 넘도록 방치돼 있으며 통화안정증권 증가압력을 완화하는 것도 당면과제다. 이밖에 2,0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의 효율적 운용, 고액권을 비롯한 화폐제도 선진화, 한ㆍ중ㆍ일 중앙은행간 협력, 경제예측 및 분석기능 강화 등 박 총재가 그려놓은 밑그림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아직 채워지지 않은 콘텐츠는 몽땅 신임 총재의 몫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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