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4일 귀국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가운데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삼성은 전날까지만 해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이 회장이 당초 전망과는 달리 불참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귀국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연막'을 피웠다.
재계와 언론은 이 회장이 토리노 IOC 총회에는 반드시 참석하려 할 것이고 그경우 머무르고 있던 일본에서 곧바로 이탈리아로 날아가는 것보다는 귀국해 잠시라도 국내에 머무는 '모양새'를 갖춘 뒤 재출국할 것으로 예상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IOC 총회 불참은 자연스럽게 이 회장의 해외체류가 더욱 장기화할 것이라는 예상으로 이어졌으나 결과적으로 그의 전격적인 귀국은 이와 같은 예상의 '허를 찌른' 셈이었다.
베이지 색 재킷에 검은 목도리를 착용한 이 회장은 휠체어에 탄 채 입국장을 나섰는데 삼성측은 "일본에서 건강관리를 위한 산책도중 미끄러져 발을 다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시기적으로 절묘한' 부상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이 회장으로서는 사실 IOC 총회에 '참석할 수도, 그렇다고 참석하지 않을 수도 없는'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참석한다면 "5개월씩이나 해외에 체류하며 귀국은 외면하면서 외국으로는 잘도 다닌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고 참석하지 않는다면 IOC 위원으로서 '기본 책무 소홀'이라는 지적과 함께 부산 IOC 총회 유치투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운동 등 국가적 현안에 관심이 없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 부상으로 인해 IOC 총회에는 자연스럽게 불참할 수 있게 됐고 '치료'를 명분으로 귀국의 계기까지 마련한 결과가 됐다.
휠체어에 앉은 이 회장의 모습은 오랜 해외 생활의 피로와 그간의 '마음 고생'을 말해주듯 지친 표정이 역력했으나 건강은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았다.
이 회장 자신도 입국장 안에서 기자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건강은 좋은데 넘어져 발을 다쳤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또 "지난 1년간 (삼성이) 소란을 피워 죄송하다"면서 "국제경쟁이 하도 심해 상품 1등 하는데만 신경을 썼다. 그런데 국내에서 (삼성이) 비대해져서 느슨한 것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해 향후 자신의 행보는 '삼성 바로잡기'에 초점이 맞춰질 것임을 시사했다.
이 회장의 귀국은 사전 예고나 조짐이 없이 그야 말로 전격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그의 귀국 순간을 '별러 왔던' 반(反) 삼성' 성향의 시민단체들은 공항 내에서 항의시위를 조직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X파일 진실 규명' 등을 요구하는 성명을 내는데 만족해야 했다.
취재경쟁에 나선 수십명의 기자들과 경호원 사이의 몸싸움을 제외한다면 이 회장의 귀국은 '매끄럽게' 진행됐으나 삼성의 입장에서 보면 마침 이날 발생한 에버랜드의 수영장 천장붕괴 사고가 '옥에 티'였다고 할 수 있다.
삼성 한 관계자는 "하필이면 그룹 총수가 5개월에 걸친 장기 해외체류를 마치고 귀국하는 날에 대형 안전사고가 일어날 게 뭔가"라고 탄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