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잠자는 성장산업 보험을 깨워라] <3> 줄줄 새는 보험금

스쳤다 하면 입원…車 과다정비… '모럴해저드에 빠진 한국'<br>'보험금은 공돈' 사회전반 인식에 일부 병원·정비업체도 누수 가담<br>결국 보험료 상승등 소비자 부담 진료수가 조정 등 제도개선 시급




지난 3월 보험연구원은 충격적인 조사 결과를 하나 내놓았다. 서울과 경기도에 거주하는 25~65세 성인 남녀 8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가운데 3명가량은 자동차사고가 났을 때 손실 과장, 운전자 바꿔치기 등 사실상의 보험사기를 용인할 수 있다고 답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 전반에는 '보험금은 공돈'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사고가 난 뒤 허위로 입원하는 '가짜 환자'는 무려 연간 8만8,000만명에 달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일부 정비업체와 병원은 허술한 제도를 이용해 보험금 누수에 가담하고 있다. 이는 보험사의 수익성 악화와 보험료 상승을 불러와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또 과잉진료로 건강보험의 지출 증가와 재정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스쳤다 하면 드러눕는 '입원 공화국'=우리나라 교통사고 환자의 입원율은 다른 주요국보다 최고 10배나 높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08년 교통사고 환자의 입원율은 60.6%에 이른다. 반면 일본은 6.4%, 유럽도 15~20%에 불과하다. 물론 크게 다친 가입자들도 있겠지만 경미한 사고 때도 무조건 입원하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는 것이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2008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에 자동차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 환자 가운데 가짜 환자로 추정되는 부재환자 수는 무려 8만8,079명에 달한다. 보험금 누수액은 약 865억원에 이른다. 김성 손보협회 보험조사팀장은 "병상을 지키고 있지만 보험금 때문에 일부러 입원한 일명 '나이롱 환자'의 규모는 부재환자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같은 기간 보험사기에 따른 누수보험금이 약 1조5,000억원, 질병 등의 사전고지의무 위반에 따른 누수보험금은 약 4,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매년 1조9,000억원의 보험금이 새고 있는 것이다. 4인 가구 기준으로 가구당 보험료를 14만원씩 더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통값…가청…공청…수리비 천정부지=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손보사들이 2008회계연도에 교통사고 차량 수리에 지급한 보험금은 3조2,310억원으로 전년보다 2,311억원(7.7%) 증가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비업계는 정비수가를 지금(1만8,228∼2만511원)보다 최고 50%까지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손보업계는 정비수가가 1,000원 오르면 보험료도 1% 오른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더구나 수리비에 거품이 많다는 게 손보업계의 주장이다. 자동차 부품상과 공업사들이 자동차 수리내역을 허위로 청구하는 '가짜 청구(가청)'와 '공장 청구(공청)' 등이 보험금 누수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정비업체가 사고 차량을 견인해오는 기사에게 사례비를 제공하는 일명 '통값'도 공공연히 횡행하고 있다. 정비업계는 손보사들이 수리비를 일방적으로 깎고 대금지급을 늦추는 등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반 판매 때보다 오히려 순이익이 적다는 것이다. 반면 손보업계는 '정비-부품-견인업체'의 불법적인 연결고리나 과다 수리, 불건전 영업 등의 관행부터 개선하는 정비업체의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국내 등록차량 대수는 2000년 1,205만여대에서 2008년 1,679만여대로 39.3% 늘어난 데 그친 반면 같은 기간 정비업체 수는 3,010곳에서 4,705곳으로 56.3%나 늘었다. 정비업체당 차량 대수도 4,006대에서 3,569대로 10.9% 줄었다. 이득로 손보협회 상무는 "난립한 일부 정비업체들이 수익을 내기 위해 과다 정비를 하거나 허위로 청구해 이에 따른 보험금 누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도 개선 및 인프라 구축 필요=이처럼 보험금 누수에 따른 사회ㆍ경제적 손실이 천문학적인 규모에 이르면서 제도 개선과 인프라 구축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행 요양급여 체계를 예로 들어보자. 대학병원에서 같은 증상으로 같은 치료를 받아도 교통사고 환자는 진료수가 가산율이 높아 일반 환자보다 진료비를 12% 정도 더 낸다. 반면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보험 종류에 상관없이 진료수가 가산율이 같다. 병상을 보유한 중소병원이 너무 많다는 점도 문제다. 병상을 보유한 일부 중소병원이 수익을 목적으로 교통사고 환자를 유치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이 때문에 교통사고 환자의 경우 과잉진료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공정한 심사체계도 갖춰야 한다는 게 보험업계의 주장이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요양급여제도를 개선하고 심사 업무를 일원화해야 병원이 교통사고 환자를 선호하는 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들도 인프라를 구축해 보험금 누수를 줄여야 한다. 예를 들어 중고부품 사용을 활성화하기 위해는 유통전산망 구축 및 품질인증제도 도입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보험원가를 줄이는 기반 조성도 필요하다. 조연행 보험소비자연맹 사무국장은 "보험사들이 초과사업비를 줄이면 보험료를 약 4% 내릴 수 있다"며 "보험료 추가인하 여력이 있음에도 과당경쟁을 하느라 사업비만 지나치게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보험금 누수,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다"

병원·정비업체등과 상생 모색 보험사도 과지급 줄이기 사활 보험금 누수가 선의의 계약자에게 피해를 주고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지는 등 여러 부작용을 낳으면서 정부와 보험업계가 대처방안 마련에 적극 나섰다. 금융 당국은 보험업계와 병원ㆍ정비업체 간 상생방안 등을 유도하고 있고 보험사 역시 해외 사례 연구 등을 통해 과다지급되는 보험금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보험업계-병원·정비업체 상생 모색=금융감독원은 밖으로 새는 보험금을 줄이기 위해서는 보험업계와 병·의원, 정비업체 간의 협력이 필수라고 보고 있다. 상생협약을 체결해 병·의원들이 부재환자를 줄이고 적정 진료비를 보험사에 청구해야 하는 대신 보험사들은 이를 토대로 진료비를 성실히 지급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또 정비업체의 난립으로 견인사례비 요구나 등록되지 않은 업체에 하청을 주는 등의 불법정비 관행이 보험금 누수를 불러오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은 이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관계부처에 '신고포상금제도' 도입을 건의하기로 했다. 또 자동차보험 진료수가를 일원화하는 방안도 조속히 추진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유럽 및 일본이 중고부품을 재활용하는 특약에 가입하면 자차 보험료의 5~10%를 할인해주는 사례를 벤치마킹해 올 하반기에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 정비수가를 절감하기 위해 정비공장에서 비순정부품을 사용할 경우 순정품과의 가격 차이 가운데 일정 부분을 정비업체에 인센티브로 제공하는 '그린(Green) 수가제'을 도입하기로 했다. 미국이 중고 재활용 부품을 사용하면 보험회사가 정비공장에 부품 가격의 20~25%를 인센티브로 주고 있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금감원은 또 보험사들이 더 많은 보험계약을 유치하기 위해 이익 발생과는 관계없이 대형 대리점에 높은 수수료를 지급하고 있는 것을 보험금 누수의 원인으로 보고 현행 이익 수수료 체계를 성과에 연동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보험사, 과지급 보험금 줄이기 '사활'=보험금 누수의 근본적인 문제는 선의의 계약자가 아니라 편법을 일삼는 일부 계약자에게 보험금이 상대적으로 많이 돌아간다는 데 있다. 이에 손보업계에서는 보상직원의 재량권을 줄였고 생보사들은 소액보험금도 2~3차 검증 후 지급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최근 손보사들은 보상직원 업무평가 때 조기합의보다는 보험금 지급금액에 더 높은 점수를 부여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100만원에 달하던 보상직원의 재량권도 50만원으로 줄였다. 이는 경기침체로 생계형 보험범죄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데다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보사들도 손보업계와 마찬가지로 생계형 보험범죄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지면서 2~3차 검증작업을 통해 보험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동안 생보사들은 보험금이 200만원 미만의 소액일 경우 담당자가 서류검증작업만 끝내면 즉시 지급했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단순 골절 등의 경우에는 병·의원의 진료기록만 제출하면 보험금을 지급해왔으나 최근에는 직접 병·의원에 확인을 하고 담당 팀장의 확인을 받아 지급하고 있다"며 "이는 밖으로 새는 보험금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이처럼 보험금 누수를 줄이려는 노력과 더불어 감독 당국의 권고안대로 대리점의 판매비용을 줄여 보험료 인상을 억제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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