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강원도에 있는 에너지 관련 공기업에서 근무하는 이모씨는 지난 설 연휴 때 동네 지인으로부터 5만원 상당의 과일상자를 선물로 받았다. 그는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지인이 "이게 우리네 정(情)"이라며 건네주는 것을 끝까지 마다할 수 없었다.
# 3. 배모씨는 포장마차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관할구청에서 최근 배모씨가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곳을 우선정비 대상으로 지정하며 철거를 요구했다. 다행히 배모씨의 단골손님 중에는 해당 구청장의 대학 동기가 있었다. 배모씨는 구청장의 대학 동기를 통해 포장마차를 계속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 4. 초등학교 교사인 김모씨는 최근 원래 집보다 넓은 아파트를 한 채 구입했다. 적당한 가격에 주변 입지도 좋아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파트를 구입한 직후 학부모들과 면담하는 과정에서 원래 집주인이 학부모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안)이 도입되면 위의 사례들은 모두 형사처벌 또는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는 '위법행위'에 해당된다.
#1과 2는 공직자가 직무 관련성과 무관하게 금품을 수수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내용에 저촉된다. #3은 제3자를 통해 부정청탁 하는 행위를 금지한 조항에 위배된다. #4 역시 교사의 직무 관련자에 해당하는 학부모와 금전(부동산)거래를 한 만큼 이해충돌 방지 원칙에 반하는 행위다.
사실상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해온 일상생활 중 상당 부분이 법에 저촉되는 셈이다. 이 법의 적용 대상은 공직자(154만명)와 그 가족(직계 존비속, 형제자매와 배우자, 약 10명)에게만 적용해도 약 1,540만명, 사립학교·유치원·언론계까지 포함하면 2,150만명에 이른다는 법무부 검토자료가 있다. 전국민의 절반이 자칫하다가는 범법자가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김영란법이 국회를 통과해도 법 위반사례가 너무 많아 사문화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관료 마피아) 척결'이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의 유력 정치인까지 김영란법 처리를 거듭 강조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 법이 실제 통과됐을 경우 일상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실제적 관심은 적다.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인 이혜미 변호사는 "법을 만들더라도 체계적 정합성과 균형에 맞는 제도가 마련돼야 하고 법률제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통제장치가 실효성 있게 작동할 수 있도록 공직문화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