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또 상처받은 실명제(사설)

대법원은 지난 17일 「12·12」와 「5·18」 및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사건 상고심 선고공판을 열고 관련 피고인들의 유죄를 최종 확정했다. 이로써 17년만에 단죄된 「성공한 쿠데타」는 역사의 한 장으로 넘겨졌지만 광주학살사건의 전모는 파헤쳐지지 못한 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판결 자체가 갖는 력사성과 법리성으로 전세계가 주시한 「세기의 재판」이었다. 이 세기의 재판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새로운 판례를 남겼다. 그것은 문민정부의 치적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는 금융실명제의 허점을 지적한 것이다. 대법원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전환해준 정태수·금진호 피고인 등의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함으로써 지난 93년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실시된 금융실명제가 정착단계에서 또 한번 흔들리게 됐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 재정 경제명령」은 금융기관에 거래자의 실명 여부를 확인할 의무를 부여한 뒤 이 의무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금융기관 종사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처럼 차명거래를 통해 자금을 은닉한 경우 긴급명령으로는 처벌할 방법이 없어 검찰은 금융기관의 실명확인 의무를 방해한 것으로 보고 차명거래의 명의대여자를 형법상의 업무방해죄를 적용, 기소해 왔다. 이에대해 대법원은 「긴급명령은 금융기관의 업무에 대하여 예금계좌를 실명전환하는 사람의 명의가 주민등록상의 본인과 동일한지 여부만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히고 「긴급명령은 또 가명 예금통장과 함께 주민등록증과 인감을 들고 나타난 사람이 과연 자금의 실제 소유주인지를 금융기관이 확인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이를 확인할 권한과 수단도 마련해두지 않고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대법원이 금융실명제의 문제점을 지적, 이의 보완을 명령한 셈이다. 금융실명제는 시행 이래 「검은 돈」의 실명 전환과 관련, 여러가지 부작용이 일어온 것도 사실이다. 이번 판결은 여느면 「합의 차명일 경우에는 처벌할 수 없다」는 법의 맹점을 부각시켜 「검은 돈」의 합의 차명 조장이 우려되고 있다. 따라서 보완대책이 시급해졌다. 지금까지 긴급명령으로만 운용되고 있는 금융실명제를 「돈 세탁 방지법」 등으로 대체 입법화, 실명제가 차명으로 인해 더이상 실명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검은 돈」의 양성화, 과세의 공평성, 사회정의 실현 등 실명제의 목표가 왜곡되지 않고 정착될 수 있도록 보완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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