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보기 즉 「관음증」은 그만큼 끈질기고 때론 위력적이기도 하다.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을 둘러싼 논쟁이 급기야 등급외 전용관의 허용 문제로 귀착되는 최근의 과정을 살펴보면, 관음증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지 알 수 있다.그러나 영화진흥위 위원 선임문제를 놓고 충무로가 두 쪽이 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문화관광부가 지난 5일 입법예고한 영화진흥법 개정안이 다시 한 번 영화인들을 패싸움으로 몰고가고 있어 문제이다. 이른바 등급외 전용관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만든 장선우 감독이 『단 한 컷도 자를 수 없다』고 배수진을 치는 바람에 등급을 줄 수 없다고 판정을 내린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사실상 검열기관이 아니냐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거짓말」을 상영할 수 있는 등급외 전용관이 생긴다고 해서 과연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일까.
물론 문제는 현행법상 영화가 등급을 줄 수 없는 등급외 판정을 받으면 국내 상영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얼마전 「노랑머리」가 등급외 판정을 받아 상영길이 막혔다가 영화사측에서 내용을 수정하면서 겨우 상영된 경우가 있었다. 등급외 판정을 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노랑머리」는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 서울서만 25만명이 극장을 찾았고,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는 10여장 씩 테이프를 갖다놓아도 빌려보기가 무척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거짓말」과 등급외 전용관의 함수관계를 따져보자. 입법예고된 영화진흥법 개정안에 따르면 「등급외 전용관」은 광고가 불가능하고 비디오 출시도 금지된다. 전용관 숫자 자체가 흔히 말하는 「대박」을 터뜨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임도 불문가지이다.
장 감독의 고집대로라면 「거짓말」은 등급외 전용관에서 상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되는 장면을 수정하면 18세 이상 등급을 받아 전국의 수십개 일반 극장에 간판을 내걸 수 있다. 제작비가 20억원 가까이 들어갔다는 「거짓말」의 제작사가 이런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자명하다. 영화 제작사의 자체 검열은 이런 상황에서 피할 수 없다. 「표현의 자유」 운운하지만 무엇보다 「돈」이 문제가 아닌가.
등급외 전용관에서는 과연 어떤 영화들이 선보일 것인가. 싸구려 유사 포르노 수입영화이거나 「젖소부인」류의 영화들이 판을 칠 것임은 분명하다. 등급외 전용관은 애시당초 포르노그래픽 전용관이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다.
「등급외 전용관」 문제는 지금 상당히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등급외 전용관은 「거짓말」이나 「노랑머리」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포르노그래픽을 공식화할 것이냐의 문제에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용웅 문화레저팀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