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11월 15일] 카르멘의 자유와 사랑

누가 카르멘을 한마디로 표현해달라고 말한다면 나는 ‘자유와 사랑’이라는 단어를 대답 대신 들려주고 싶다. 칼을 뽑아 들고 돌아올 것을 강요하는 돈 호세에게 카르멘은 아무 두려움 없이 이 말을 외친다. “자유롭게 태어났고 자유롭게 죽을 거예요!” 카르멘은 애써 남성을 유혹하지 않는다. 맨발로 뛰어다니며 큰소리로 웃고 떠들고 싸우고 마시고 흥에 겨운 대로 춤추고 그 자유로움 안에서 그녀는 자신의 여성을 표출한다. 그 자유로운 매력에 남성들은 사랑에 빠지고 지배당하는 것이다. 꾸민 감정연기론 감동줄 수 없어 카르멘에게 사랑이라는 것은 마치 집시 어린아이와 같다. “사랑은 자유로운 새와 같아서 잡으려 들면 멀리 날아가버리고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때 갑자기 찾아들죠.” 우리와 다른 사랑의 모습이라 이야기하겠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의 본질은 오히려 이런 모습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의 바로 이런 모습이 나에게는 언제나 가장 넘기 힘든 과제이다. 우리들이 삶에서 익힌 감정표현과는 거리가 한참 멀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오페라가수를 꿈꾸며 몰려든 학생들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공개 레슨을 받을 때 레나토 브루손 선생님에게 혼나던 일이 기억난다. 선생님에게는 전에도 몇 번 평가를 받았고 그때마다 큰 칭찬을 받아서 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섹시한 척 연기를 하며 하바네라를 불렀다. 그날 별 말씀이 없으셨던 선생님은 일주일 정도를 참아주시더니 마침내 폭발한 듯 무섭게 꾸짖으셨다. 이번에는 언제쯤 칭찬을 해주시려나 하며 선생님의 칭찬을 기다리던 나에게 들려온 음성은 마치 날벼락 같은 소리였다. “나는 더 이상 네 노래를 듣고싶지 않다. 너는 오늘부터 내 수업에 들어올 수 없다.” 나는 나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10여년 전 훌륭한 성악가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이탈리아에 가서 난생 처음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 선생님은 심사평을 통해 “이렇게 좋은 메조소프라노의 음성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 후 약 5년 뒤에 다시 콩쿠르에 참가해 입상할 때 선생님은 “음성이 더욱 고급스럽고 부드러워졌으며 여성미와 짙은 호소력이 있다”며 ‘벨루또’라는 단어를 연발하며 극찬을 했었다. 금세기 최고의 성악가로 일컬어지는 선생님에게 이런 칭찬을 들은 나는 더욱 자신감이 생겨 진정한 성악가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아니 그랬던 그 선생님의 입에서 이런 말씀을 듣다니! 그런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밤새 울어서 팅팅 불은 눈을 하고 오기와 악으로 끝까지 수업을 마친 나에게 수석졸업이라는 영광을 선사해주셨을 때 나는 비로소 선생님의 깊은 뜻과 새롭게 내가 배우게 된 것의 실체를 알게 됐다. “네가 애써 연기하려는 섹시함은 카르멘의 섹시함이 아니다. 네 안에서 살아있는 사랑을 자유롭게 밖으로 꺼내라.” 나는 그때부터 밖에 있는 카르멘을 모방하기보다는 내 안에 있는 카르멘을 끄집어내서 연기하는 데 몰두해 지난해 말 독일 하노버극장에서 열린 예술의 전당 공개 오디션에 통과해 국내 최고의 무대에서 카르멘으로 데뷔하는 영광까지 얻게 됐다. 무대에서 자유를 가진다는 것, 그것도 좋은 소리로 노래하며 정해진 스토리를 이끌어가야 하는 오페라무대에서 자유를 가진다는 것 그것은 나 같은 신참내기 성악가에게는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 평생을 고민하며 공부해야 할 숙제일 것이다. 한국오페라 탄생 60년과 김자경오페라단 창단 40주년을 기념해 사상 최대 규모로 무대에 올려졌던 카르멘 공연을 막 끝내고 난 지금 자유라는 단어 안에서 카르멘이라는 한 집시의 캐릭터가 갖는 아름다움과 그 배역을 노래하는 성악가의 아름다움은 같은 빛깔을 지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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