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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다가올 석유시대 종말… 창의력·혁신서 희망 찾다

■ 2030 에너지전쟁(대니얼 예긴 지음, 도서출판 올 펴냄)<br>중동 패권 놓고 발발된 이라크 전쟁 등 에너지 둘러싼 총성없는 전쟁 파헤쳐 천연가스·전기차 등 미래 변화 조망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이라크의 석유 인프라를 겨냥한 약탈과 태업이 재건 의욕을 좌절시켰다. /사진제공=도서출판 울


2011년 3월 11일 오후에 발생한 대지진의 여파로 후쿠시마현 다이치 원전을 비롯한 인근의 발전 시설이 파괴되면서 도쿄 일대 전력 공급이 중단됐다. 지진에 뒤이어 몰아 닥친 거대한 쓰나미는 다이치 핵 발전소의 보조 디젤 발전기를 침수시켰다. 이후에도 며칠 동안 폭발이 연이어 일어났고 방사능이 유출됐으며 핵 연료봉이 녹아내리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했다. 후쿠시마 사고는 인근의 다른 발전소 피해와 겹치면서 도쿄와 도쿄 북동부 지역의 전력 수급에 차질을 빚었고, 일본 정부는 꼼짝없이 순환 정전 조치까지 취해야 했다.

지구의 또 다른 편에서는 다른 종류의 위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튀니지의 시디부지드라는 작은 마을에서 경찰의 집요한 노점 단속에 항의하던 젊은 과일 장수가 온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으로 저항했다. 그의 죽음과 이어진 시위의 물결은 휴대폰, 인터넷, 인공위성의 위력에 힘입어 튀니지를 비롯한 북아프리카와 중동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거센 저항의 파도는 튀니지에 이어 이집트 정부까지 무너뜨렸고 리비아의 시위는 내란으로 바뀌었다. 리비아의 석유 수출량이 줄어들면서 수십 년 동안 중동을 지탱했던 지정학적 균형이 붕괴되고 국제 원유가는 무섭게 치솟았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동시에 일어난 이 두 사건은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세계 에너지 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줬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즉 에너지가 우리가 사는 세계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 하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대니얼 예긴 IHS 케임브리지에너지연구협회회장은 현재 세계 에너지 분야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이 있는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1992년 석유를 중심으로 펼쳐진 국제 사회의 움직임을 재조명한 책 '황금의 샘'을 발간해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그의 최신작 '2030 에너지전쟁'은 세계의 에너지 판도와 미래 변화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모색한다. 저자는 1,000쪽에 가까운 분량의 책에서 베이징의 도로부터 중동, 미국 국회의사당 등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에너지 전쟁'을 둘러싼 다양한 현상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 숨어있는 에너지의 근본적인 문제를 끄집어낸다.


1970년 중반 석유금수조치의 충격 이후 대체 연료 개발에 박차를 가한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풍력에 세금 우대정책을 폈고, 그 바람에 과거의 '골드 러시'에 못지 않은 '윈드 러시'가 있었다. 요즘 대체에너지로 주목 받는 에탄올은 이미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자동차 연료 지위를 놓고 석유와 경쟁을 벌였지만 뜻하지 않게 금주법에 발목이 잡히기도 했다. 반면 브라질에서는 사탕수수를 에탄올로 만드는 노력을 일찌감치 기울였으며 이런 노력 덕택에 브라질의 자동차 연료는 휘발유가 아닌 에탄올이 주류다. 옛 소련의 붕괴에 대해선 석유수출국인 덕분에 국제 유가 상승으로 연명했던 허약한 체제가 유가 하락이라는 치명타를 맞은 탓이라고 분석한다. 미국의 실패한 개입으로 회자되는 이라크 전쟁도 중동 에너지의 패권이 주된 원인이라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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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에 일어난 다양한 사건을 들여다보면서도 저자는 3가지 근본적인 물음을 일간되게 견지한다. ▦늘어만 가는 세계적인 수요를 충족시킬 만큼 에너지가 있는가 ▦세계의 운명이 달린 에너지 시스템의 안전을 도모할 방법이 있는가 ▦기후변화를 포함한 환경적인 문제가 에너지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등이다.

특히 현재 65조 달러 규모인 세계 경제가 불과 20년 후인 2030년에는 130조 달러대로 폭발적인 성장할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더욱 통찰력 있는 진단과 예측이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방대한 인용 자료와 주장의 핵심은 결국 '재생가능 에너지의 부활'로 압축된다. 그는 인간의 창의력과 혁신에 강한 희망을 보인다. 석유 시대의 종말이 가까워진 만큼 저자는 천연가스나 셰일가스(Shale Gas, 퇴적암층에 매장된 가스) 등을 예로 들며 새로운 공급원에 주목한다. 아울러 전기차의 활용과 획기적인 배터리 기술 개발, 수소 고속도로와 연료전지 등 획기적인 연료 효율성 제고 등을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전망했다. 다소 난해할 수도 있는 내용에다 방대한 분량이지만 이 책을 한 번 잡으면 놓지 못하게 만드는 힘은 퓰리처상까지 받은 작가의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 덕분이다. 3만 8,000원.

정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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