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13일] 네팔 내전


1996년 2월13일, 네팔. 3개 경찰서가 습격을 받았다. 경찰은 이렇다 할 저항도 못하고 무기고의 열쇠를 내줬다. 사건 직후 마오쩌둥(毛澤東)주의자들이 성명을 발표했다.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지배’와 ‘인민전쟁’. 10년에 걸친 네팔 내전이 시작된 순간이다. 내전 훨씬 전부터 네팔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였다. 국왕과 인도가 권력을 과점한 반봉건-반식민지 상태였기 때문이다. 1961년부터 1990년까지 의회도 없이 국왕이 전권을 휘둘렀던 30년 암흑기도 겪었다. 민주화운동으로 다당제를 인정하는 새 헌법이 발표돼 1994년 통일공산당이 정권을 잡았지만 내분이 일어났다. 급진적 개혁을 원하던 마오쩌둥 추종자(마오이스트)의 불만은 경찰서 습격을 계기로 내전으로 번졌다. 초반에는 정부군이 우세했다. 미국제 무기로 무장하고 국민들도 좌익의 내분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익 연합체인 네팔의회파는 공산당을 물리치고 정권을 찾았으나 안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왕가의 내분 탓이다. 2001년 왕세자(당시 29세)가 자동소총을 난사해 국왕과 왕비ㆍ공주 등 8명을 사살한 총기 난사극으로 국민들은 왕가에 등을 돌렸다. 음모설 속에 즉위한 전 국왕의 친동생 가넨드라 국왕의 철권통치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강도 높은 시위와 파업이 이어지고 미국과 유엔이 화해를 촉구하자 네팔 왕가와 공산반군은 2006년 내전을 종식시켰지만 10년9개월 동안 1만2,700명이 죽고 15만명이 집을 잃었다. 민심을 잃은 국왕은 국민의 압력에 2007년 말 사임을 발표, 네팔은 공화국으로 다시 태어났다. 238년 왕정을 종식시킨 신생 공화국 네팔의 장래는 주목 대상이다. 중국의 공산혁명 이념을 받들면서도 경제개발을 공약하는 실험이 통할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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